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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인 지역아동센터, 갈 곳 없는 아이들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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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인 지역아동센터, 갈 곳 없는 아이들 어쩌나

입력
2016.03.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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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취약계층 아동으로 한정… 맞벌이 등 서류 증빙도 의무화

“취약계층만 방임 일어나는 것 아닌데, 현실 도외시”

저소득층 아닌 방임 아동ㆍ서류 증빙 못하는 아동 방치 우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A(7)양은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다. 경기 부천에서 우유대리점을 운영하는 A양의 부모는 낮 12시30분 하교하는 A양을 지역아동센터에 맡기려 했지만,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지난해까지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저소득층과 일반 가정 아동들을 돌봐왔지만, 정부가 올해부터 이용대상을 취약계층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A양 부모의 실제 소득은 매달 약 180만원 정도지만 건강보험료 상 소득기준이 초과해 이용이 불가능하다. 자녀 3명을 키우고 있는 A양의 부모는 A양을 학원에 보낼 여력도 안 된다. A양은 방과 후 우유 대리점에서 지내고 있다.

중학생이 된 중국 동포 B(13)양도 올해부터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교가 끝나면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숙제도 하고 저녁식사도 해결했다. 올해 중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로 옮기려 했는데, 부모의 맞벌이 여부를 서류로 증명할 수 없어 이용불가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까지 맞벌이 부부는 별도의 증빙서류를 낼 필요가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부모 모두 1일 8시간 이상, 월 20일 이상 일한다는 증빙서류를 내야 한다. B양 아버지는 일용직, 어머니는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는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서류증빙은 불가능하다. B양이 다녔던 지역아동센터의 센터장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은 맞벌이 여부를 서류로 증빙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데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아동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지역아동센터의 이용대상을 취약계층 아동으로 한정하면서 실제 돌봄이 필요한데도 도움을 받지 못해 방치되는 아동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5일 보건복지부의 ‘2016년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안내’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중위소득 100%(3인 가구 월 357만원) 이하 가정의 초ㆍ중학생 중 한부모ㆍ조손ㆍ기초생활수급 등 취약계층의 아동만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는 기초생활수급 등 우선보호아동을 정원의 최소 60% 이상으로 하되, 일반가정 아동도 40% 내에서 센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지난 해 센터 이용아동 중 일반가정 아동은 17% 정도다.

경기 부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동들이 지난달 설을 맞아 음식만들기 행사를 하고 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제공
경기 부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동들이 지난달 설을 맞아 음식만들기 행사를 하고 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제공

복지부는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방임(아동학대)이 취약계층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계모의 학대로 지난달 사망한 고 신원영(7)군의 집도 아버지가 항만회사에 다니며 월 400만~500만원 정도 받았지만 방임 상태였다. 이에 평택의 지역아동센터가 2013년부터 약 1년간 식사 등을 제공하며 신군을 돌봤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하기도 했다. 김순구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부모의 소득이 많은 가정의 아동이라고 해서 모두 돌봄을 잘 받는 건 아니다”라며 “지역아동센터가 지역의 방임 아동들을 돌보는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해왔는데, 새 지침 때문에 많은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게 됐다”고 우려했다.

증빙서류로 모든 조건을 확인하도록 한 점도 문제다. 자녀를 방임하는 부모나 조손 가정의 경우 관련 증빙서류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지역아동센터가 취약계층만을 위한 시설이 되면 ‘못 사는 아이들만 가는 곳’이라는 낙인이 생길 우려도 크다.

소득이 아닌 실제 돌봄이 필요한 아동인지 여부를 센터 이용의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형모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교 교사나 지역사회 전문가가 돌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준과 상관없이 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정해체 등 불가피한 돌봄 사각지대 발생 때는 지자체장 승인으로 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예외규정을 뒀다”고 해명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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