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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여성학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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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여성학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입력
2011.07.1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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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내 가학ㆍ피학 줄이려면 복무기간 더 짧아져야"

불과 보름 사이에 군인 10명이 죽었다. 전차사고로 세상을 떠난 1명을 빼면 모두 군대 내 가혹행위와 연관되어 있는 자살과 총기사고이다. 건강한 청년들로 국가의 부름을 받았던 이들이 왜 죽음을 선택하거나 동료를 쏘게 된 것일까. 여성학자 권인숙(47) 명지대 교수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노동운동가로 전두환 정권의 성고문 사실을 폭로했던 그는 2000년에 미 클락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내 안의 군사문화'(Militarisme in my heart)를 썼고 이를 토대로 2005년에는 한국 사회 모든 곳에 깃든 군사문화의 흔적을 파헤친 <대한민국은 군대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군대 내 성폭력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남성성을 극대화시킨 군대라는 곳을 통해 젠더의 문제를 오래 탐구해온 여성학자는 이번 사고에서 무엇을 봤을까.

_ 여자 둘이 군대 이야기를 하려니 남자들이 뭐라 할지 신경쓰인다.

"여자들이 군대 이야기하면 남자들 반응 격렬하다. 메일도 엄청 쏟아지고."

_ 심한 욕설도 하나?

"그렇지는 않다. 여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걸 남자들이 못 참는 건 나라를 위해 희생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왜 나서냐는 것인데, 나도 희생을 안 한 사람은 아니니까."(웃음)

_ 어쨌든 여자도 군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오히려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_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달 것까지야.

"90년대 후반에 미국에 갔더니 거기서는 한국의 지식인사회에서 군사문화에 대해 논의를 엄청 많이 하고 정리가 완전히 되어 있는 줄 알고 있더라. 그제야 대학시절에 사회의 모든 문제를 논의했지만 군대 이야기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정치군인의 문제, '하면 된다'는 문화는 논의해도 진짜 군대에서 사병들 사이에 일어나는 가학과 피학의 문제를 이야기한 적은 없다. 한국사회에서도 2005년에야 영화를 통해 처음 나왔다.('용서받지 못한 자') 군대 내 성폭력 문제도 군대 간 사람이면 다 아는데 이야기하진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도 종교를 떠나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2001년 오태양씨가 처음이다.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자기 경험을 분리시켜서 이야기하질 못한다. 국방부는 자기 이해관계가 걸려있으니까 사병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 절대로 동의하지 않고. 국방연구원에서도 모병제 주장하는 이도 있고, 20만명이면 충분하다 그러는데.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젊은이들 데려다놓고 이 제도가 꼭 이래야 하는 것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니까 경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군대가 얼마나 좋아져야 할까에 대한 금기 없는 상상력을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_ 바뀔 수 있을까?

"2005년도에 훈련소 인분사건과 연천 초소 총기사건이 나면서 노무현 대통령 때 군대문화 바꾸는 것을 대대적으로 했다. 내무반이 생활관 개념으로 바뀌었고 서열에 대한 개념도, 가혹행위도 많이 줄었다. 2008년 조사에서는 욕이 늘었다고 할 정도로 육체적 가혹행위는 줄었다. 그런데 작년에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사건 속에서 군기 강화라는 것이 다시 강조되면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_ 공교롭게도 자살군인이나 총기사고가 일어난 곳이 모두 군기가 세다는 해병대와 특공부대다.

"한국사회가 유난스레 극기와 위계문화를 존중하니까 해병대가 인기를 너무 누렸다. 지원율이 항상 3대 1이 넘어가고 사회에서도 극기훈련시설이 모두 해병대 나온 사람이 차린 것이다. 세대간 갈등이나 정신을 도닥이는 문화를 해병대에서 많이 찾았기 때문에 해병대의 자정능력이나 자성능력을 사회전체적으로 빼앗아 버린 점이 있다."

_ 부모들이 자녀들을 자발적으로 해병대 극기훈련장에 보내기도 하고.

"청소년들이 공부를 안한다거나 생활이 느슨해지면 군대식 복종과 극기훈련이 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극기훈련 자체야 어떤 인간한테는 필요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해병대의 실체가 이것만은 아닌데, 극단적인 남성성을 요구하고 그 전형에 딱 맞지 않으면 밀려나는 그 상황은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_ 성과 연관된 가혹행위가 많아서 놀랐다. 해병 1사단 정일병의 자살 이유에도 들어있고, 총기사고가 난 2사단의 경우 바지 아랫도리 부위에 불을 붙였다, 해병대에는 성매매계가 있어서 거부하면 기수열외가 된다 등등 사례를 들여다보면 해병대에 뽑혀갈 만큼 멀쩡했던 가해 일병이 밤에 잠을 안자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혹시 이런 것과 연관된 것은 아닌가도 의심해보게 된다.

"군대뿐 아니라 극단적인 남성성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어디나 신참이 들어왔을 때에 너희들이 버려야 할 것은 '찌질한 여성성'이고 차차 얻게 되는 것이 '진정한 남성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성희롱이 일어난다. 남자들에게 성기가 상징하는 것이 가장 크니까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있는지, 네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얼차려 같은 가혹행위와 달리 드러났을 때도 '장난으로 했다'고 하기도 쉽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남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니까 그 모욕감을 극복하기 힘들다."

_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로는 15.4%가 실제로 군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던데.

"세 집단으로 조사했는데, 제대 후 2년 내 청년이나 휴가 나온 군인을 대상으로는 절반이 넘었는데 현역군인을 영내에서 조사한 경우 비율이 낮아서 그렇게 됐다. 대대장이 보는 데서 설문조사를 쓰는데 누가 사실을 밝히겠나. 실제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_ 그런데도 왜 제대한 사람들이 그걸 밝히고 근본적인 문제를 삼지 않을까?

"우선은 인간적인 모멸감 때문이고. 선임자가 되면 자기도 공격에 가담하기 때문에도 그렇고. 군대라는 것이 힘든 경험이라 의미있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걸 밝힐 경우 모든 의미가 무색해지리라는 것을 아는 거다."

_ 그런 일을 겪으면 남자들은 주변에는 이야기를 하나?

"여자들도 안하는데. 가족한테도 이야기하기 힘들다. 가혹행위도 그렇고. 약한 소리를 하면 남자가 아니니까."

_ 남자여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남자집단에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은 권력에서 밀려나는 것일 뿐 아니라 폭력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청소년들 가운데도 술을 빨리 마시고 담배를 빨리 피우는 아이들은 누가 봐도 건장한 남자애들이 아니라 여성적 외모를 가지고 여러 가지 입증이 필요한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_ 군대에서 말하는 남성성이라는 게 뭔가?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위험한 상황에서 약해지지 않는, 여자답지 않은, 그래서 성적인 욕망까지 강해야 하는. 이게 군대의 조직원리기도 하다. 언제 남자라는 걸 느꼈느냐 설문하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남자들은 힘이 들수록 내가 남자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힘을 얻고 기쁨을 느낀다. 반면 여성들을 교육하면서 보면 힘이 들 때 나는 여잔데 그러면서 힘을 얻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못 봤다.(웃음) 성폭력은 이런 감정조차 갖지 못하게 하니까 이중의 처벌이다."

_ 과거 여성운동이 성폭력은 그저 폭력의 한 종류였을 뿐이다라는 것을 일깨웠듯이 남자들에게도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5, 6학년 집단에서도 서열짓기를 위해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피해자는 남자가 아니라고 느끼는데 남자에게 남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사실 군대의 남성성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 남성들 자신이 가장 반발을 한다. 사병간 계급질서를 없앤다는 방안도 2005년에 나왔는데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남자들이 다 반대한다. 군복무 기간 줄이는 것도. 남자들은 그 정도 일병, 상병 시기를 거쳐야만 진정한 군인이 된다는 근거를 많이 댄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하는 거 보면 순서가 있다. 공익이 깔아주면 육군이 잡아주고 해병대가 눌러준다… 카투사는 아예 말을 안 꺼낸다. 이걸 보면 군대의 남성성은 국가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다. 해병대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고생하고 훈련이 강하고 그게 군대를 위해 필요한 자기희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정을 하는 식이다."

_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이 기준이라는 점에서는 좋은 측면이다.

"그렇다. 그런데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전인격이 몰수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군대 갔다온 사람들도 다 안다. 육체적인 게 힘들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징병제를 유지하겠다면 이런 가학과 피학의 관계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_ 해병 기수라는 게 불과 2주 차이로 나는 것인데, 사병들끼리 이렇게 서열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군대의 짬밥서열이나 사회의 나이서열을 보면 복지적 측면도 있다.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일정한 나이나 계급이 되면 누구한테 심부름을 시킬 수 있고, 근사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 이게 완벽한 개인주의 사회보다는 도피처가 된다. 여기서 기준에 도달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 소외시켜 버리면 나머지 사람들끼리 결속력은 강해진다. 그게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가게 된 데는 군대 지휘관들이 군대를 유지하는 데 사병끼리의 질서를 너무 이용한 측면이 있다. 극단적인 찍어누르기로 외형상 문제가 없길 바라고, 사소한 잘못도 굉장히 심하게 질책을 한다. 사병이라는 게 배워나가는 시기인데, 사병들끼리 지지고 볶게 하면서 장교들은 손 안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_ 대안이 있을까.

"사병들 간의 가학과 피학의 시기를 줄이기 위해서도 사병들의 복무기간이 확 줄어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은 1년 이하다."

_ 짧게 더 많은 사람을 훈련시켜려 하면 비용이 더 든다, 적응이 어렵다, 이러는데.

"시다 미싱사 관계에서 시다가 2~3년을 일해야 미싱사가 된다고 하는데, 시다가 한 달만 집중적으로 하면 미싱 할 수 있다. 학번 나이 서열이 중요하고 그걸 지키는 사람이 도덕적이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사회에서 군대만 바뀌기도 힘들다. 요즘은 대학생들이 1학년을 마치면 군대를 간다. 거기서 군대 서열문화를 배우고 복학하면 후배들을 데리고 군대식 집단훈련을 따라 한다. 2008년에 전국 대학생 조사를 했더니 기합 받아봤다는 비율이 30%더라. 대만은 중국과 대치하고 입시경쟁이 치열해서 한국과 비슷한데 모임 끝나면 교수들도 자리 정리하고 학생들 간에도 나이 상관없이 그냥 이름 부르고, 한국 같은 위계질서가 없다. 대만에서는 군대를 대학 마치고 가는데 복무기간도 1년 정도로 짧다. 그러니까 시민문화가 군대에 영향을 미치지 군대문화가 시민문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것을 한국사회도 배웠으면 좋겠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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