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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풍년 탓?…천덕꾸러기 쌀, 해결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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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풍년 탓?…천덕꾸러기 쌀, 해결책 없나

입력
2016.09.2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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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원조 등 소비확대 헛바퀴…쌀 보관비만 한해 5000억원

농업진흥지역 해제·사료작물 재배 등 생산 억제방안 모색해야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농산물 최저가격 인상과 밥쌀 수입 금지, 백남기 농민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농산물 최저가격 인상과 밥쌀 수입 금지, 백남기 농민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마치고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중에 쌀이 넘쳐난다. 소비가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4년 연속 풍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양곡 창고마다 재고가 수북해지면서 쌀값은 바닥을 모른채 곤두박질치고 있다.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할 농민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풍년의 역설'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등장한다.

◇ 밥 안 먹는 사회…소비 감소가 원인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72.4g으로 전년보다 3.3% 줄었다. 보통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공깃밥 2그릇도 먹지 않는 셈이다.

1985년도에는 한 사람이 한해 128.1㎏의 쌀을 소비했다. 그러던 것이 30년만인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62.9㎏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쌀 생산은 여전하다. 논 면적은 해마다 감소하지만, 다수확 품종이 보급되고 재배기술이 향상되면서 쌀 수확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쌀 생산량을 420만t으로 추정했다. 벼 재배면적은 77만8,734㏊로, 작년(79만9,344㏊)보다 줄었지만, 기상여건이 좋았고 병충해·태풍 등이 비켜가면서 벼 이삭이 풍성해졌다는 설명이다.

당연히 쌀 시장은 과잉 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햅쌀 가격은 80㎏ 1가마당 13만8,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0% 넘게 떨어졌다. 소득이 줄어든 농민들은 쌀값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국내 쌀 재고량은 175만t이다. 지난해 같은 시점(133만t)보다 42만t 많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80만t)을 2배 이상 웃돈다. 보관비만 한해 5,000억원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또 적정 수요량보다 35만t 많은 쌀이 초과 생산될 전망이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귀하게 대접받던 쌀이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아프리카 지원? 가축 사료?…속 시원한 대책 없어

정부는 남아도는 쌀 처리를 위해 여러 가지 소비 확대방안을 고민해왔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외국 원조에 쓰거나 저소득층에 무상으로 나눠주는 방안 등이 검토됐다. 중국 등에 수출이 추진되고, 묵은 쌀은 올해부터 가축 사료로도 제공된다.

그러나 만지작거리는 정책마다 번번이 헛바퀴만 돈다. 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감안할 때 당장의 대북 지원은 불가능해 보이고, 외국 원조 역시 만만찮은 가공·운송비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10만t을 외국에 원조할 때 2,400억원의 가공·운송비가 들 것으로 추정했다. 보관비(316억원)보다 8배 많은 돈이 든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이나 무료급식소 등에 무상으로 쌀을 대주는 방안도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무상공급분만큼 시장 소비가 사라져 결국 농민에게 피해가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묵은 쌀을 가공식품이나 가축 사료로 무한정 공급하기도 힘들다. '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이는 데다, 쌀값 안정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농식품부도 이런 조치가 일시적으로 쌀 재고를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쌀 생산을 줄이고, 국민에게 밥을 더 먹게 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됐다.

◇ 농업진흥지역 해제 검토…"쌀 생산 억제 필요"vs"식량안보 위협"

급기야 정부와 새누리당은 쌀 생산기지인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해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농지를 줄여야 쌀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식량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인 데다, 땅 투기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농지를 한번 다른 용도로 바꾸면 논으로 되돌리기 힘들고, 흉년 들거나 국제곡물가격이 오를 때 쌀값 폭등을 부추길 수도 있다.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머물러 있다. 지난 22일 당정협의회에 참석한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농지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진흥지역을 정부가 앞장서 풀 경우 농업 투자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고 고민스러운 속내를 내비쳤다.

농민단체도 "진흥지역 해제는 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부동산 투기만 조장하는 조치"라고 반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식량자급률(20%대)을 유지한 국가에서 식량 생산기지를 줄이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말이 안 되는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종혁 정책부장은 "쌀값 폭락은 생산과잉의 문제라기보다는 무분별한 밥쌀용 쌀 수입에 따른 것"이라며 "쌀 수입부터 먼저 중단한 뒤 쌀 대책을 논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 벼 대신 사료작물 재배…정부 종합대책 마련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도록 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벼 이외의 작물을 심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줘 쌀 생산을 줄이자는 얘기다.

정부는 이미 쌀 농가를 지원하는 직불제 개선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쌀 농가에 일정액의 고정직불금을 주면서, 쌀값이 목표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변동직불금으로 채워주는 지금의 직불제를 손보겠다는 뜻이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임정빈 교수는 "쌀에만 생산장려책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는 힘들다"며 "쌀 이외의 작목에도 생산비 연계 직불정책을 도입해 농민에게 작목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정책이 있었다. 2003∼2005년 한시적으로 시행된 '쌀 생산 조정제'는 벼농사를 짓지 않고 휴경하는 농가에 지원금을 줬다. 이어 2011∼2013년에는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을 통해 벼 대신 콩·고추 등 대체작물을 심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첫 사업은 휴경 지원이 문제가 됐고, 두 번째 사업은 국산 콩 가격 폭락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를 두 번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사료작물 재배를 유도하는 쪽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생산량이 부족한 가축용 조사료를 생산해 쌀 과잉생산을 막고, 축산분야 경쟁력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관건은 예산확보다.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는 농민에게 직접 현금을 주는 방식의 쌀값 안정대책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내년 3만㏊의 논에 벼 대신 사료작물을 심게하려면 900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식량정책과 유미선 서기관은 "사료작물 전환을 유도하면서, 다수확 품종 대신 품질 좋은 종자를 보급해 쌀을 고급화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촉진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의 아침밥 먹기를 응원하기 위해 '내일의 아침밥'이라는 초간단 레시피를 정부가 직접 제공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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