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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문 열지 않는 문화는 죽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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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문 열지 않는 문화는 죽은 문화”

입력
2015.11.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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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서 강연하는 르 클레지오. 뉴시스
이화여대에서 강연하는 르 클레지오. 뉴시스

“한국인들은 전쟁과 정치적 문제들을 겪으면서 넉넉한 마음과 인심을 가져왔습니다. 마음을 열어 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넉넉한 마음과 인심이야말로 곧 평화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프랑스 작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5)는 25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한국의 이민자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혼종과 풍요:세계 문학과 문화로 본 이주’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는 ‘제15회 김옥길 기념강좌’ 강연으로 마련된 것이다.

르 클레지오는 최근 파리 테러로 난민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번져가고 있지만 “겁을 내지 말고 두 팔 벌려 이주민을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살고 나눔으로써 불의를 줄일 수 있고 절망적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을 구할 수 있으니 공유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테러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의 테러까지 수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는 “서구 중심의 사상에 대한 반항으로 나왔다고 해도 테러를 수용할 수는 없다”며 “20대의 젊은 테러범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기 생도 마감하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인도양의 섬 모리셔스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줄곧 자랐지만 학생 때부터 서구적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만들어냈다. ‘조서’ ‘사막’ ‘황금물고기’ 등이 대표작이다. 2007년에 1년 간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강의한 적도 있다.

르 클레지오는 강연에서 “타자에게 문을 열지 않는 문화는 죽은 문화”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세기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끔찍한 전쟁 범죄를 일으킨 독일과 일본, 그리고 순수한 프랑스의 유산을 지키겠다는 망상에 나치즘과 결탁해 유대인과 집시를 박해하는 데 동참했던 프랑스 일부 지식인들이 그 증거다. 그는 “인종적 판타지에 기초한 순수성의 정체성에 갇히는 것은 평화와 번영에 가장 큰 위험”이라고 경고했다.

르 클레지오는 “유럽이 이민자들로 인해 위협 받는 것이 아니라 수혈을 받아 새롭게 파종하는 사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중세 유럽은 아랍과 극동의 건축 기술, 항해 도구, 지도, 활자 인쇄술 등을 받아들여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민자가 없었다면 세계는 자신만의 편견과 믿음에 갇혀 소통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야만적인 조직, 적대적인 종족들의 집합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힘을 키워가는 한국이나 이민자에 배타적인 정책을 펼치는 극우정당이 승승장구하는 프랑스를 걱정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극단적인 사회주의 정당에 반대했던 것처럼 극우 정당의 정권 창출도 막아야 합니다. 작가뿐 아니라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극우 정당이 힘을 얻는 걸 막아야 합니다.”

르 클레지오는 26일에는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송기정 이화인문과학원 원장, 정명교 연세대 국문과 교수,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과 좌담도 가졌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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