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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처음이고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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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처음이고 끝이다

입력
2016.01.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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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차려진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영결식은 18일 오전 11시 엄수된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 차려진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영결식은 18일 오전 11시 엄수된다. 연합뉴스

신영복 선생님이 별세하셨다. 비통한 마음 금하기 어렵다. 어느 사회든 그 나라 지식사회에는 큰 어른과 같은 지성인이 있다.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시니 우리 지식사회에는 이제 어른이 없다는, 주인을 잃었다는 느낌을 갖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지성인에게 가장 소중한 덕목이 인간에 대한 사랑,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통찰, 무엇보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기품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신영복 선생님만큼 이를 분명하게 증거한 지성인을 찾기는 어렵다.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돌아볼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더없이 따듯한 인간적인 모습이다.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가 제작한 광복 60년 기념 교양프로그램 ‘한국 지성사’를 진행할 때 선생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성공회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마친 다음 선생님은 직접 밖으로 배웅을 나오셨다. 함께 온 프로듀서, 촬영 및 조명 스태프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시고 성공회대 새천년관 앞에 있는 느티나무 옆에서 떠나는 우리를 끝까지 지켜보고 서 계셨다.

자신이 만난 모든 이들에게 이렇듯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지성인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때 나는 선생님에게 사람이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성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것임을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이 땅에 지식을 전하는 교수들은 많지만,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많지 않다. 신영복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결코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교수이기 이전에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일러준 선생으로서의 스승님이셨다.

2년여의 투병생활 중 선생님이 남기신 가장 마음 아픈 글귀는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2015) 서문에 나오는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이다. 안타까운 부음을 듣고 선생님이 발표하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나무야 나무야’(1996) ‘더불어 숲 1ㆍ2’(1998) ‘강의’(2004) ‘변방을 찾아서’(2012) ‘담론’ 등을 펼쳐봤다. 선생님의 언어는 명징하고 따듯하며 마음 시리게 한다. 한 사람이 20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감옥 안에서 무한의 고독을 견뎌낸 내면 기록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냉전분단체제라는 비극적 현대사를 인식하기에 앞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진정한 인간주의란 무엇인지를 끝없이 되묻게 한다.

선생님 사상이 겨냥한 궁극의 목표는 인간해방이다. 이에 도달하기 위한 두 지반은 사회과학적 정치경제학과 철학적 관계론이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은 한국사회와 세계사회를 파악하는 선생님의 기본 인식틀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람과 사람을 단절시키는 물신성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체제라는 것이 선생님의 메시지다. 이 자본주의가 인간을 고립된 존재로 보는, 언제나 승패를 요구 받는, 결국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존재론의 철학을 낳았다고 선생님은 비판하신다.

관계론은 존재론에 대한 선생님의 사상적 대안이다. 관계론이란 ‘나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성의 총체’가 인간 생명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뜻한다. 이 관계론의 패러다임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상적 거점임을 선생님은 강조하신다. 그래서 마지막 저작인 ‘담론’에서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연대입니다. 관계론의 실천적 버전이 연대입니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를 뜻하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은 20년의 수감생활을 견디게 했던, 선생님이 가장 아껴 오신 희망의 언어다. 인구절벽ㆍ취업절벽ㆍ소통절벽ㆍ계층절벽 등 사방이 온통 절벽들로 둘러싸인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은 ‘사람’을 키움으로써 ‘인간적인 사회’를 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선물을 안겨주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 희망을 풍성하게 하고 실천하는 일은 살아남은 이들의 당연한 책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영면하시길 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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