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진하 기자

등록 : 2017.07.05 04:40
수정 : 2017.07.05 10:26

[겨를] "다시, 피아노"... 나를 위해 건반을 두드리다

어렸을 적 강제로 교습... 성인돼 피아노 앞에 다시 앉는 사람들 늘어

등록 : 2017.07.05 04:40
수정 : 2017.07.05 10:26

대학생이 된 후 다시 피아노를 시작한 윤지희(가명)씨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피아노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있다.

“문학 작품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음악도 그래요. 여기까지는 야수 같이 강한 부분, 그 다음은 떨고 있는 작은 새 같은 느낌.

이렇게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느낌을 살려서 쳐보세요.”

50분 간 강사와 수강생의 1대1 집중 레슨이 이뤄지고 있는 피아노 방 안에는 상당한 수준의 기교가 필요한 라흐마니노프의 에튀드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같은 시각 건너편 방에서는 “도레미, 하나 둘” 하며 손과 입으로 수강생에게 박자를 맞춰주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성인취미 피아노 학원 ‘위드피아노’ 광화문점에는 피아노를 연주하려는 수강생들이 몰려 들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일찍 퇴근한 직장인, 방학이 시작된 대학생, 프리랜서 등 5,6명이 방 안에 들어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퇴근 이후인 오후 7~8시에는 10명이 넘는 수강생들로 학원이 가장 붐빈다.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낮과 밤으로 피아노 앞에 앉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 이날 학원에서 만난 수강생들은 성인이 된 후 취미생활을 하나 만들고 싶어서,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해보고 싶어서, 그저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학원을 찾아 왔다고 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가 다른 만큼 수준도 천차만별이었지만 어릴 적 피아노를 그만 둔 이유만큼은 대부분이 일치했다. 초등학생 때까지 ‘체르니 40’을 치며 소싯적 피아노 좀 쳤다 하는 학생들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업전념을 이유로 대부분 피아노에서 손을 뗀다. 집에 피아노가 있다면 종종 피아노를 쳤겠지만, 손은 금세 굳고 만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다시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이런 사연을 지니기 마련이다.

직장인 유현경(32ㆍ가명)씨도 그랬다. “어른이 되고 나니 평생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는 유씨는 1년째 꾸준히 피아노를 치고 있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 피아노를 배우다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접었다. 취직을 하고 난 후에야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연습하는 곡은 연주회에서 듣고 마음에 들었던 슈베르트의 즉흥곡이다. 그는 “죽기 전에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은 이들은 “어릴 땐 뭘 하는지도 모르고 정해진 틀에 맞춰서 연습했다면 지금은 동기부여가 돼 더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강유진(25ㆍ가명)씨는 집에 피아노가 없어 퇴근 때마다 연습하러 학원을 찾는다. 그는 최근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OST를 직접 연주하고 싶어 학원까지 찾게 됐다. “어릴 땐 흥미를 쉽게 잃었는데 지금은 배우고 싶은 곡을 함께 배우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스트레스도 풀린다. 그런데 어릴 때 습득력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성인취미 학원의 가격은 한달 4회 레슨에 20만원 선이다. 물론 악보를 읽을 줄 안다면 독학도 가능하다. 최근엔 피아노 강좌가 인터넷 강의로도 제공된다. 수준급의 곡을 연주하고 있던 대학생 윤지희(21ㆍ가명)씨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피아노를 완전히 잊고 살았다. 대학생이 된 후 캠퍼스에서 피아노 연습실을 보고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3년 동안은 혼자 연습했다. 학원을 찾은 이유는 “인터넷에서 잘 치는 연주자들을 볼수록 욕심이 나고 모르는 걸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학원의 강사 오연록(25)씨는 “악보를 볼 줄 안다는 게 연주의 전부는 아니다. 잘못된 자세를 고치거나, 작곡 배경이나 곡 분위기 등 곡에 대해 더 깊이 배우려는 분들이 학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실력에 관계 없이 가장 중요한 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습하려는 의지다.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거나 처음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팁을 오씨에게 들어봤다.

①일단 시작하자. ‘배우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접어 두고 일단은 피아노 앞에 앉는 게 중요하다.

②초보자들은 악보를 보는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절대로 악보에 계이름을 적어 외우지 말 것. 악보를 읽는 데 익숙해지지 않은 채 곡만 외우면 다른 곡을 연주할 수 없다.

③중급자들은 좋아하는 곡, 한 곡만을 완주하려는 데 목표를 두면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기본기를 함께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연습곡으로 피아노가 지루해질 때 평소에 좋아하던 곡을 함께 연주하자.

④일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는 바쁜 성인들은 30분만이라도 피아노 앞에 앉자. 짧은 시간 하더라도 매일, 꾸준히 집중해서 하는 게 중요하다.

⑤목표를 설정하자. 쇼팽 왈츠 한 곡 완주를 목표로 설정하고 녹음까지 해 본다면 뿌듯함과 동기부여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⑥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아노 연주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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