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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가 혐오시설? 법까지 바꾼 강남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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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가 혐오시설? 법까지 바꾼 강남 이기주의

입력
2015.10.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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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노후로 확장이전 추진했지만 "주거환경 악화로 집값 하락 우려"

예정지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 반대

경찰, 간담회 등 1년 설득하다 포기

2년여간 표류했던 서울 강남의 대치지구대 이전사업이 인근 공원을 새 부지로 확보하면서 사실상 모든 행정절차를 마쳤다. 하지만 지구대를 ‘혐오시설’ 취급한 주민들 탓에 현행 법령까지 바꿔가며 새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 등 지구대 이전사업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이기주의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대치동 한티근린공원을 대치지구대의 새 부지로 확정하고 강남구청으로부터 올해 8월과 9월 각각 부지점용허가와 건축허가를 받았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내년 초 새 지구대 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다.

경찰이 대치지구대 확장이전을 추진한 것은 2013년 9월 무렵이다. 현 지구대는 35년이 경과해 노후화했고 부지(144㎡) 역시 정원 67명을 감당하기에 비좁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산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1차 이전 예정지인 대치동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주민들은 지난해 1월부터 지구대 이전 예정지 인근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한 아파트는 입주민 960세대 중 762세대가 지구대 이전 반대에 서명할 정도로 입장이 완고했다. 지구대를 오가는 취객의 소란으로 주거환경이 악화될 수 있고 지구대 차량으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여기에 집값 하락 우려도 지구대 이전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취객과 범죄 연루자들이 오가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인근 주민들은 대부분 사설경비업체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치안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주민들의 반대에 경찰은 지난 1년간 간담회만 10여차례 열어 지구대 이전의 필요성과 치안 확보 등 긍정적 효과를 피력하고 주민 불편이 없도록 입주자 의견을 지구대 설계에 반영하겠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끝까지 이전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올해 1월 결국 1차 예정지를 포기했다.

대체 부지를 찾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찰은 인근 한티공원을 새 부지로 검토했지만 이번에는 현행법에 발목을 잡혔다. 도시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은 점용허가 대상을 건축 연면적 기준 116㎡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연면적 400여㎡로 예정된 새 지구대는 들어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골칫덩이로 전락한 지구대 이전 문제는 올해 8월 ‘건축 연면적 430㎡ 이하의 지구대를 신축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국토교통부가 법률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가까스로 풀렸다. 그 사이 치안에 집중해야 할 경찰은 부지 이전의 묘수를 찾느라 국토교통부, 법제처, 기획재정부, 구청을 오가며 동분서주해야 했다.

지구대 새 부지가 한티공원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에 지역주민들은 반색했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경찰이 지구대 이전을 강행할까 봐 노심초사 했는데 1차 예정지로 들어서지 않아 다행”이라며 “앞으로 정부 정책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우여곡절 끝에 새 부지를 확보했지만 주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지구대를 혐오시설 취급하는 분위기 탓에 경찰관들의 사기가 떨어졌다”며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면 씁쓸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혀를 찼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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