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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놓고 의협-한의협 또 첨예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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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놓고 의협-한의협 또 첨예 대립

입력
2015.01.1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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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개혁 일환으로 엑스레이ㆍ초음파 허용 추진

"환자에 편리" "경제적 접근", 시민ㆍ건강단체도 찬반 갈려

담당 복지부 입장 어정쩡해,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 우려

지난달 28일 국무조정실이 규제 기요틴 회의를 열어 엑스레이, 초음파기기 등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허용방안’을 규제개혁 추진과제에 포함시키자, 의사와 한의사가 찬반으로 갈라져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의사들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의료행위”라며 강력반대 하고 있고, 한의사들은 “국민건강권과 한방 현대화를 위해 의료기기 사용은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정작 의료서비스 이용의 주체인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허리질환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김혜정(76)씨는 “침을 맞으면서도 상태가 나아졌는지 알 수 없었는데, 한의원에서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한의사 말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아 환영”이라고 했다. 서울 지하철 교대역 부근에서 만난 직장인 박선웅(38)씨는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해 치료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고, 한의사들이 의사처럼 판독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민들 입장에서야 나쁠 것이 없지만, 연초부터 의사와 한의사가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 같아 보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국민건강권 차원에서, 사회ㆍ의학적 견지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의료소비자연대 관계자는 “한의사들에게 있어 가장 큰 딜레마는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를 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가 미흡한 것”이라며 “효율적 진단과 환자의 진료권 보장이란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고려될 만한 사안”이라고 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한방에서도 발전된 현대기술을 사용해 진료를 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판독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반드시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이 첨부돼야 한다”고 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문제는 단순히 규제개혁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학문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정부가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사회적 합의 없이 고시개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원격의료 진료와 마찬가지로 의료적 접근이 아닌 경제적 원리로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전국 1만3,000여 한의원에서 엑스레이, 초음파 기계를 사용하게 되면 침체돼 있는 국내 의료기기시장이 활성화 돼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정부 의도를 분석했다. 한방 쪽에서도 한의원에서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1조원 규모의 한방 의료기기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흉부 엑스레이 촬영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흉부 엑스레이 촬영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의 생각만큼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의 한 의료기기업체 대표는 “경영이 어려운 한의원들이 엑스레이, 초음파 기기를 구입한다 하더라도 저가나 중고 기기를 구입할 확률이 크다”며 “몇몇 의료기기업체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보면 의료기기 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했다. 의료기기를 사용한다 해도 의료기기를 통한 진단과 치료가 주된 치료법이 아닌 만큼 수요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번 사태가 의사와 한의사 간 ‘밥그릇’싸움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가 명확한 입장 정리를 통해 사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미적지근하다. 보건복지부 한의학정책과 관계자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사안을 정리할 것”이라고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과 관련된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고 했다가, ‘기획재정부 등에서 사전에 복지부와 논의하지 않았나’라는 기자의 다그침에 “사전에 논의했지만 복지부의 공식적 입장은 밝힐 수 없다”고 입장 표명을 극구 피했다.

경희대 한의과대학생들의 초음파기기 실습 모습. 경희보궁한의원 제공
경희대 한의과대학생들의 초음파기기 실습 모습. 경희보궁한의원 제공

복지부의 어정쩡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서울시 보건정책과가 보건복지부에 한의사의 진단용 초음파기기 사용과 관련한 질의회신 내용이 대표적이다. 당시 복지부는 한의사가 TV 방송에 출연, 출연자의 종아리 비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진단용 초음파기기를 사용한 행위가 의료법 위반인가를 묻는 질의에 대해 ‘한의학적 이론 및 한방원리 입각한 의료행위를 한방의료행위로 규정하는 것에 비춰 볼 때 한의원에서 초음파기기를 사용해 진단하는 것은 한방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한의원에서 의료기기 사용은 환자의 질병상태, 기기의 특성, 치료, 검사방법 및 한의학적 원리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돼야 할 것이며, 의료인의 연구목적 및 학술적인 목적을 위해 충분한 근거가 인정될 경우 의료기기 사용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답변이다.

익명의 한 보건의료단체 관계자는 “연초부터 의사와 한의사 모두 국민건강을 지키겠다며 아전투구를 벌이고 있지만 의사와 한의사 눈치만 살피고 있는 복지부가 과연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격화돼 파업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추후에 다시 논의를 하자며 정부가 뒤로 물러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국민”이라고 비판했다.

[의사 입장] "면허 없이 운전하는 격 오진 발생 누가 책임지나"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겁니다. 한의사들은 이들 의료장비를 휴대폰카메라나 디지털카메라처럼 촬영만 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정훈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위원회 위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한 마디로 판독 능력이 없는 한의사들이 엑스레이, 초음파 등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의료기기를 다룰 수 있는 ‘면허’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 위원의 주장이다. 조 위원은 “제아무리 한의사가 의료기기 관련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해도 면허가 없기 때문에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며 “이는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교육의 질과 양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한의사들은 한의과대학에서 엑스레이, 초음파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의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한의과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은 의과대학에서 보면 교양과목 수준에 불과하다”며 “엑스레이, 초음파 등 영상의학은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병원 현장에서 환자들을 상대하며 축적된 기술이 있어야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한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일반의들처럼 자신들도 엑스레이, 초음파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을 공부한 일반의들과 한의사들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쓰겠다고 우기는 것은 마치 의료법을 공부한 의사가 의료법 사건을 판사 대신 맡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건강권을 위해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조 위원은 “한방의료 행위를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한의사”라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잘못 사용해 오진이 발생하면 오히려 국민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의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엑스레이, 초음파 시술을 통해 그들이 늘 말하는 오장육부를 환자에게 보여주며 한방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시간을 끌어 적기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의 한 척추관절병원 병원장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들 스스로 한의학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라며 “판독 자체가 힘든 한의사들이 영상의료기기를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2000년에 실시된 의약분업 때보다 의료계 반발이 더 클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조 위원은 “만약 정부가 경제 살리기란 명분으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한다면 의사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또 “일각에서는 의사와 한의사들이 타협을 통해 대안을 찾으라고 하는데 타협을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것을 제외한 규제는 풀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의사들에게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려 하는건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의사 입장] "한의대도 의료기기 교육 한방 현대화 위해 필요"

“컴퓨터단층촬영기(CT), 자기공명영상촬영기(MRI) 등을 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엑스레이, 초음파촬영기를 사용해 국민에게 보다 질 좋은 한방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한의사들은 국민건강권을 위해서라도 한의원, 한방병원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지난해 한의원, 한방병원에서 골절질환 치료로 국민보험관리공단에 청구한 건수만 425만 건”이라며 “한의원에서 엑스레이, 초음파 기기를 사용하게 되면 환자들이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아픈 발목을 이끌고 양방 병원을 갔다와야 하는 불편함이 없어질뿐만 아니라 체계적이고 객관화된 한방치료를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와 달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한의사들이 엑스레이, 초음파 등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사들의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이사는 “한의과대학에서 방사선학, 영상의학, 임상기기진단학, 진단검사의학, 필수임상실습 등 영상진단기기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며 “한의사들이 영상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김 이사는 “말로는 한의학을 과학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막상 의료기기를 활용해 한방치료의 객관성을 확보하려 하니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의사들은 이들 의료장비가 서양의학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들 장비는 진단에 필요한 장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의료기기를 사용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한의사들은 엑스레이, 초음파 장비가 의사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성우 경희보궁한의원 원장은 “1980년대 초반 국내에 초음파장비가 도입됐을 때 의사, 한의사가 함께 교육을 받았다”며 “당시 의사들은 지금 미국에서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송한덕 선생이 집필한 ‘초음파영상진단의 이해’를 지침서로 삼아 공부한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체의학 시장 확보를 위해서도 의료기기 사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 원장은 “중의사들은 초음파, 엑스레이는 물론 첨단 의료장비 등을 자유롭게 이용해 10조원에 육박하는 전 세계 대체의학시장을 석권하고 있는데 우리 한의사들은 말도 안 되는 규제 때문에 세계시장에 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의사들은 의료기기 사용이 현실화되면 골절질환은 물론, 부인과질환, 내과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 이사는 “진단 의료기기를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이들 질환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 70% 이상이 한의원에서 의료기기를 이용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는데 의사들은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상실할까 봐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는 “그동안 의사들 눈치 살피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던 보건복지부가 오랜만에 일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국민입장에서 보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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