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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딸 결혼식, 아빠는 엄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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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딸 결혼식, 아빠는 엄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입력
2016.10.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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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버스화재 신원 속속 확인

여행 내내 사위 자랑하던 부부

혼주 빈자리 삼촌 부부가 대신해

형제부부 중 혼자 살아남은 동생

“졸라서 함께 떠난 여행

아이처럼 좋아하던 얼굴 눈에 선해”

한화 재직 아들은 동료까지 잃어

“사택서 오랫동안 부대낀 형님”

16일 울산 관광버스 화재사고 사망자 유류품에서 발견된 ‘육동회’ 회원들의 단체 사진. 사망자와 생존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16일 울산 관광버스 화재사고 사망자 유류품에서 발견된 ‘육동회’ 회원들의 단체 사진. 사망자와 생존자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의 결혼식 대신 싸늘하게 식은 아내의 곁을 지켰다. 16일 오전 울산 상개동 울산국화원 장례식장에는 사흘 전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시신 10구가 놓여 있었다. 시신이 화마(火魔)에 훼손된 탓에 아직 누구의 가족인지도 알 수 없었다. 김성렴(63)씨는 이번 사고로 아내 이명선(59)씨를 잃었다.

이날은 딸(32)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다. 새 출발을 앞둔 딸의 예식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자신도 불 타는 버스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부상자였지만, 그는 가족의 만류에도 전날 퇴원해 집에서 미혼의 마지막 밤을 보낸 딸과 함께 했다. 자식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위로였다.

울산 시내 한 예식장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담담하게 치러졌다. 잔칫날의 떠들썩함도 없었고, 200여명의 하객 누구도 그날의 아픔을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았다.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면 이 자리에서 해단식을 하자며 의기투합했던 육동회 회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여행 내내 사위 자랑에 여념이 없던 부모는 결국 이날 딸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보지 못했다. 엄마는 눈을 감았고, 아빠는 그런 엄마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김씨와 세상을 등진 아내가 있어야 할 신부 혼주석은 삼촌 부부가 자리를 채웠다. 아버지 김씨 대신 신랑과 입장한 딸은 예식 내내 애써 슬픔을 감췄지만 가족사진을 찍는 순서에서 기어이 참았던 눈물을 내보였다. 김씨의 아들 현진(35)씨는 “어머니가 큰 경사를 앞두고 여행가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도 부부동반이라 큰 맘 먹고 떠나셨는데…”라며 울음을 삼켰다.

형제 부부 중 3명이 목숨을 잃은 진덕곤(61)씨 유족 20여명은 비통함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진씨 부인 서잠순(57)씨와 형 내외 성곤(72), 박분화(66)씨를 한꺼번에 잃은 슬픔이 짓눌렀다. 얼굴과 각막에 화상을 입고 울산대병원에서 치료 중인 진씨는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너무 힘들다. 아내를 찾으러 가겠다”며 성치 않은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울부짖었다.

진씨는 열한 살 터울의 형에게 남은 생애 조금이라도 좋은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 육동회 부부동반 여행에 초청했다. 성곤씨와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육동회 회원들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모시겠느냐’며 동행을 적극 권유했다. 진씨는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중국 장자제(張家界)를 나만 갔다 온 게 미안해 형에게 함께 가자고 졸랐다. 톈먼(天門)산의 안개 낀 경치를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던 형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부부는 지금까지 경비를 보태던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이번엔 여행 계획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 종형(35)씨는 “부모님이 워낙 여행을 좋아하셔서 두 분께 등산화를 장만해 드리려 전화로 발 크기를 여쭸더니 그제야 당일 중국으로 떠난다고 해 공항까지 모셔다 드린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고 털어놨다.

아버지 뒤를 이어 한화케미칼에 재직 중인 아들은 소중한 동료도 잃었다. 육동회 막내인 총무 고 김춘익(57)씨는 종형씨와 일터에서 땀을 흘려 온 사이다. 그는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일하고 사택에서 오랫동안 부대껴 살아 내게는 큰 형님 같은 분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유족들은 비로소 떠난 가족들을 품에 안았다. 경찰은 사망자와 가족 유전자정보(DNA)를 대조한 감식 결과를 통보하고 화재현장에서 수거해 신원을 확인한 유류품을 인계했다. 한 명 한 명 망자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장례식장은 울음과 탄식으로 뒤덮였다. 한 유족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검게 그을린 아내 휴대폰을 어루만지며 “내일 출근해야지”라고 읊조렸다.

2차 유류품을 공개한 자리에서는 사망자 박분화(66ㆍ여)씨 짐에서 사망자들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첩이 나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진 속 육동회 회원과 가족들은 비경을 배경 삼아 시종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망자 신원을 확인한 유족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고버스 회사인 태화관광과 전세버스공제조합 등을 상대로 장례 및 보상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유족 측은 구체적인 보상안이 먼저 나와야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사고버스는 대인의 경우 무한대로 조합에 가입돼 있어 피해 보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유족들에게 최대한 서둘러 보상 계획을 설명해 사고를 수습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한 유족이 유류품 사진에서 사망한 가족 모습을 휴대폰에 담고 있다.
한 유족이 유류품 사진에서 사망한 가족 모습을 휴대폰에 담고 있다.
16일 울산 남구 상개동 울산국화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경부고속도로 고속버스 화재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이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16일 울산 남구 상개동 울산국화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경부고속도로 고속버스 화재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이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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