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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 앞에 놓인 외교적 도전

입력
2016.11.1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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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미국 뉴욕 힐튼호텔에서 열린 선거의 밤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연합뉴스
9일 미국 뉴욕 힐튼호텔에서 열린 선거의 밤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유세 기간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동맹국들과 기구들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인지는 거의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의 선거 승리가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시작한 세계화의 단계가 본질적으로 끝났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범대서양투자무역동반자협정(TTIP) 같은 무역협정이 실패하고 경제적 세계화의 속도가 느려진다 해도 트럼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첨단기술은 기후변화, 초국가적 테러리즘, 이주 등을 통해 생태학적ㆍ정치적ㆍ사회적 세계화를 촉진하고 있다. 세계 질서는 단지 경제학 이상이다. 그리고 미국은 여전히 그 중심에 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종종 착각한다. 세계 최고의 나라라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다가 쇠락하고 있다며 불안감에 떨기도 한다. 옛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호를 발사시킨 이래 우리는 미국이 쇠락하고 있다고 믿었다. 1980년대 우리는 일본인의 키가 3m쯤 되는 줄 알았다. 2008년 대침체를 겪고 난 뒤 많은 미국인은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국이 됐다고 잘못 생각했다.

트럼프가 선거유세 동안 말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쇠퇴하고 있지 않다. 이민 덕에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21세기 중반까지도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를 겪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수입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도 늘어나기보다는 줄어들고 있다. 바이오ㆍ나노ㆍ정보통신 등 21세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주요 첨단기술도 세계 여러 나라 중 최전선에 있다. 미국 대학들은 세계 유수의 대학들 사이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주요 이슈들이 트럼프의 외교 어젠다를 가득 채울 텐데 그중 몇몇 핵심 이슈가 우선하게 될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두 강대국 중국, 러시아와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 혼란에 빠진 중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렇다. 미국의 강한 군사력은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영향력에 있어서 중요한 원천이다.

하지만 “중동의 국수주의적 주민들 내부 정치 문제를 미국이 나서서 제어하려 하는 게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트럼프가 주장했는데 이건 맞는 말이다. 중동 지역은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이후 인위적인 국경으로 나뉘었다. 이로 인해 복잡다단한 변혁을 겪고 있다. 종교적 분파 간의 분쟁과 유엔 ‘아랍 인간 개발 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지연된 현대화가 그것이다. 그로 인한 혼란은 수십년간 이어질지 모른다. 급진적인 지하디스트 테러리즘은 이런 혼란을 연료로 삼아 계속 이어질 것이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도 25년간 불안정한 정세가 이어졌다. 외부 세력의 군사적 개입은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중동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이 줄어들고 있지만 미국은 중동을 외면할 수 없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핵무기 및 화학무기 확산방지, 인권 문제 때문에 그렇다. 시리아 내전은 인도주의적 참사에 그치지 않고 중동은 물론 유럽까지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미국은 그런 사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동맹국을 강화하고 유도해 개입하는 억제적 정책을 써야 한다. 반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비효율적인 직접적 군사력 개입을 추구하면 안 된다.

대조적으로 아시아에서는 세력 균형 유지를 위해 미국의 개입이 환영받고 있다. 중국의 힘이 세지자 인도 일본 베트남 같은 나라들이 긴장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관리하는 건 21세기 외교에 있어서 난제 중 하나다. 미국이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통합과 안전’이라는 이중 전략(미국이 중국을 자유주의 세계의 질서에 편입하도록 유도하면서 일본과 안보조약을 다시 확인하는 것)은 여전히 적절한 접근법이다.

1900년 영국을 추월하며 국력이 급성장하던 독일에 대해 쌓여가던 주변국의 공포가 결국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던 100년 전과는 사정이 다르다. 당시와 달리 중국은 전체적인 힘에서 미국과 비교도 안 된다. 중국 경제가 2030년이나 2040년 전체 규모에서 미국 경제를 추월한다 해도 1인당 국민소득(한 나라의 경제적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미국에 못 미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의 군사적 하드파워나 미국에 대한 호감도를 의미하는 소프트파워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말했듯 미국이 문을 열고 세계의 재능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한 중국은 경쟁상대가 될 수는 있어도 미국이 가지고 있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 필요가 없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스스로뿐이다. 중국은 영토 분쟁으로 이웃 국가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이런 점이 중국 스스로를 억제하고 있다. 미국은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적 계획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일본, 한국과 동맹을 재확인하고 인도와 관계를 계속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문제가 있다. 쇠퇴하고 있는 나라지만 러시아에는 미국을 파괴하기 충분한 핵무기가 있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미국과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된다. 러시아는 자국의 에너지 자원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단일 작물 경제ㆍone crop economy’ 국가다. 국가 기관은 부패해 있고 인구와 건강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웃 국가와 중동에 간섭하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사이버 공격을 가하면서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의 장기적 전망을 악화시킬 뿐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쇠락하는 나라는 종종 더 위험한 정책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책적 딜레마가 여기서 생겨나고 있다. 트럼프는 한편으로 푸틴의 도전을 거부해야 한다. 무력을 사용해 이웃 국가의 영토를 빼앗는 것은 1945년 이후 자유주의 세계가 금지하고 있는 것인데 푸틴은 이를 어기면서 판도를 바꾸려 한다. 동시에 트럼프는 핵 안보, 핵무기 및 화학무기 확산방지, 반테러, 북극 그리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 문제에 관해서는 완전한 고립을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문제에는 미국이 중첩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과 에너지 분야 경제제재는 러시아를 억지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러시아와 관계를 잘 해결해야 증진할 수 있는 진정한 이익도 있다. 새로운 냉전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나라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국은 쇠퇴하고 있지 않다. 트럼프가 즉각 취해야 할 외교 임무는 화법을 좀 단정하게 고치고 미국의 동맹국과 다른 나라에 자유주의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해 미국이 계속해야 할 역할을 재확인시키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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