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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주체 ‘비체’… 페미니즘의 주역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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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주체 ‘비체’… 페미니즘의 주역이 되다

입력
2016.11.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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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그 후

이현재 지음

들녘ㆍ152쪽ㆍ1만2,000원

‘장모님, 제가 박근혜는 그마이 아니라 캤잖아요?’ 시위 현장에 등장한 이 현수막은‘속 디비지는 사위가’내건 것이다. 나라가 이 지경인 것은 여성의 잘못된 투표 때문이라는 힐난이다. 여성을 멸시하는 여성혐오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있다. 이러한 발화들이 여성혐오라고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여성학자 이현재의 ‘여성혐오 그 후’는 온라인에 등장한 새로운 페미니즘, 이른바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체(abject)로 명명한다. 대상 ‘object’에 ‘아닌’을 뜻하는 접두사 ‘a-’를 붙여 만든 비체는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공포스럽고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자들을 일컫는다. 콧물, 침, 분비물을 뜻하는 비체(鼻涕)처럼 액체성을 지닌, 흐르며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하고 오염된 것이자, 기존의 언어와 질서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비체(非體)다. 또 다른 혐오의 타깃이 된, 새로이 부상한 페미니즘 주체들을 일컫기 최적인 개념이다.

비체는 모든 규정성을 뛰어넘는 급진적 존재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혐오의 타깃이 된다. “사랑을 꿈꾸는 남성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비체들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있다. 이대로라면 여성혐오의 구도만 뒤바뀌고, ‘그 후’의 새로운 판은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비체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여성 비체들이 왜 혐오 받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말하고자 하는 이유다.

비체의 언어와 비체를 혐오하는 남성의 언어가 접점을 가지기 위해 저자는 ‘공감’의 윤리를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비체의 언어와 비체를 혐오하는 남성의 언어가 접점을 가지기 위해 저자는 ‘공감’의 윤리를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도시화는 이 사태의 핵심 원인이다. 도시적인 삶은 상품의 소비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러나 탕진을 외쳐도 찝찝하게 남는 감정들은 있다. 숙제처럼 남은 감정들을 처리하기 위해 온라인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결집된다. 된장녀를 규탄하는 ‘일베’, ‘오유’등의 남초 카페와 이를 받아치는 ‘여성시대’ 같은 여초 카페가 등장하는 것이다. 만성적 경기침체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감은 왜 분배투쟁이 아니라 여성혐오로 나타나는 걸까. 저자는 여혐을 정당화하는 남성들이 ‘무시’나 ‘평등’을 앞세우는 점에 주목한다. 일종의 인정투쟁으로, 제도적인 토대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인정’에만 매몰됐다는 것이다. 남녀평등을 말하면서도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대책이나 여성노동의 저임금화를 말하지 않는 이들은 “인정의 수사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사용하는 여성혐오 집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저자는 분배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은 여성혐오를 극복하는 중요한 축의 하나임을 강조한다.

비체들은 메갈리아, 메갈리아4, 워마드, 레디즘 등으로 나뉘는 만큼 동질적이지 않다. 하지만 비체들은 ‘소란스러운 연대’를 맺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공감(co-feeling)의 윤리는 그 방법론이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상황이 더 나음에 안도하는 동감은 공감과 다르다.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그/녀의 고통에 참여하는’ 공감을 통해 비체들은 연대할 수 있다. SNS 해시태그 운동이었던 ‘나는 페미니스트다’가 대표적 사례다. 미러링 전략이 뿌리깊은 여성혐오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봉합되지 않는 지점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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