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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천황(天皇)

입력
2015.08.1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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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왕이 언제부터 ‘천황(天皇)’이라고 불리었는지는 불분명하다. 720년에 만들어진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607년에 이미 ‘천황’이란 말이 쓰였음을 추정케 하는 기록이 있지만 신빙성이 약하다. ‘일본서기’는 645년의 ‘궁정 쿠데타’를 묘사하면서 여전히 ‘텐노(天皇)’가 아니라 ‘오키미(大王)’라는 표현을 썼다. 대신 이 쿠데타로 시작된 ‘다이카(大化) 개신’으로 일본이 고대 율령제 국가의 틀을 갖추었고, 적극적 왕권 강화에 나선 텐무(天武; 672~686년 재위)가 처음으로 천황으로 불리었음은 대체로 인정된다.

▦ 천황이란 호칭과 왕권의 밀접한 연관성은 정치권력이 무가(武家)에 넘어간 13세기 이래 약 600년 간 생시의 칭호로나 사후의 시호로 일절 쓰이지 않은 데서도 확인된다. 1817년에 시호로서 부활했고, 1868년의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600년의 공백기에 천황 칭호를 소급해 적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천황이란 호칭에 특별한 권위는 담기지 않았다. 1889년에 제정된 ‘대일본제국 헌법’ 제1조의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는 규정을 통해 ‘천황’은 일본 역사상 최고의 권좌로 올려졌다.

▦ 이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라는 일본제국주의의 역사적 과오는 한결같이 천황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패전 후 제국헌법을 대체한 ‘평화헌법’에 의해 천황은 국가통합의 상징적 존재로 남았다. 히로히토(裕仁) 천황은 군국(軍國) 일본의 최고지도자에서 어느새 상징천황으로 바뀌었다. 그의 왜소하고 힘 빠진 모습은 일본제국의 천황들조차 최고권력자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일깨웠다.

▦ 현재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일본 국민의 절대적 경애(敬愛)를 받는다. 정당한 권력, 즉 권위가 주권자인 국민의 사랑과 존경에서 비롯한 자발적 복종에 기초한다면, 현재의 상징천황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에 가까이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천황’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과거 천황의 이름으로 행해진 역사 범죄, 건원칭제(建元稱帝) 열망의 잇따른 좌절에 비춘 상대적 박탈감 등이 배경이다. 그래서 일왕(日王)이란 억지 표현에 매달린다. 15일 아키히토 천황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이 그런 의식의 족쇄를 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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