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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살리기, 도시 팽창 막고 국토환경 전체를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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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살리기, 도시 팽창 막고 국토환경 전체를 살리는 길

입력
2014.08.1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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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두꺼비하우징'

날림으로 지어 버려진 단독주택 수리·개축해 셰어하우스로 활용

서울 증산동에 '빈집 프로젝트' 1호

부도덕한 '집장사'가 지은 집들이 결국 아파트 재개발의 빌미가 돼

곳곳서 빈집 살리기 활성화되면 '비싸고 좋은 집·싸고 허름한 집'탈피

독립성 지키며 이웃과 조화 이룰 것

마당 있는 셰어하우스로 개조될 두꺼비하우징의 ‘빈집프로젝트’ 1호 주택이 외풍 점검을 받고 있다. 빈 집을 고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드는 작업이 자리잡으면 쓸데없이 신규주거지를 확장해서 환경이 훼손되는 일이나 아파트 단지 맹신주의도 벗어날 수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마당 있는 셰어하우스로 개조될 두꺼비하우징의 ‘빈집프로젝트’ 1호 주택이 외풍 점검을 받고 있다. 빈 집을 고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드는 작업이 자리잡으면 쓸데없이 신규주거지를 확장해서 환경이 훼손되는 일이나 아파트 단지 맹신주의도 벗어날 수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서울 은평구 증산동. 지하철 6호선 증산역 북서쪽, 증산중학교와 연서중학교 사이 조금 언덕진 길에는 아파트 단지로 흡수되지 않은 주택가가 있다. 단독주택과 다세대 다가구, 연립주택이 어우러진 오래된 동네이다. 이곳을 지나면 특이하게 빨간 깃발을 높이 내건 집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집이라는 표시이다.

여기는 바로 옆에 있는 수색동과 더불어 27만평이 이명박표 재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뉴타운 지역(수색·증산 뉴타운 촉진지구)으로 2006년에 지정되었으나 착공이 되지 않은 곳이다. 6월 중순 서울시에 의해 뉴타운 지역이 해제된 8개 구역에 들었으나 이곳을 아파트 단지로 만들려는 이들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을 구청에 냈고 반대하는 이들 역시 안 된다는 청원을 구청에 내면서 시비가 계속되는 곳이다. 재개발 재건축 시비가 이는 지역이 대부분 그렇듯 이곳 역시 ‘노후불량주택’개선을 언급하기에는 매우 깔끔한 주택이 매우 많다.

이곳의 빈집은 그래서 살기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뉴타운 계획이 등장하면서 개발이익을 바라고 사둔 이들이 입주는 하지 않아서 버려두었거나 오래 전 지어서 난방이나 관리의 불편함 때문에 버려둔 집들이 혼재돼 있다.

그 중 하나인 증산로 7길의 단독주택. 1980년에 지어진 이 집은 겉모양도 훤하고 집안도 깔끔하다. 108평 대지에 연면적 73평짜리 지하 1층, 지상 2층의 주택이다. 마당에는 감나무 모과나무 배롱나무가 우람하고 잔디밭 자리도 꽤 넓다. 마당에 전용 등도 설치돼 있다.

1층에 방 2개 화장실 2개, 2층에 방 3개와 화장실 1개. 부엌과 식당이 따로 설치되어 있고 통유리 거실창까지 당장 살아도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막상 따져보면 건축 단열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지 밖이 24도인데 실내는 28도까지 올라갔다. 겨울에는 거꾸로 밖의 냉기가 그대로 전달되어 난방비가 매우 많이 드는 주택이라는 뜻이다. 덩치가 큰 만큼 관리비용이 많이 든다. 단독주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도 버려져 있었던 데는 언제 철거될 지 모르는 재개발 지역 내 주택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세입자가 살기에는 주거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이 집은 요즘 한창 수리 중이다. 서울에서 저소득층 주택 대상 단열작업을 해온 사회적 기업인 두꺼비하우징이 ‘빈집 프로젝트’ 1호로 이 집을 고쳐서 셰어하우스(한 채를 여러 명이 같이 쓰는 집)를 만들고 있다. 집주인에게 빌려 수리를 한 후 셰어하우스 임대를 해주고 그 중 임대료 일부를 집주인에게 주는 방식이다.

두꺼비하우징은 이 집을 시작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을 쓸모 있게 고쳐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빈집 프로젝트’를 계속할 생각이다. 증산동에서는 셰어하우스를 만들고 있지만 수색동에서는 노모가 사둔 오래된 단독주택을 고쳐서 분가해 떠났던 자녀들이 가족들과 함께 들어와 살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있다. 이른바 코하우징 주택(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을 만드는 것.

코하우징 작업이 개축이라면 셰어하우스는 수리에 가깝다. 방수는 잘되었는지 전기 전화 배수는 불편이 없는지 단열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전문적인 도구를 가져와 꼼꼼하게 점검하는 작업부터 하고 이어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친다. 구조도 손보고 도배와 칠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서 쓸모 있는 살림집으로 거듭나게 하는 작업을 한달 가까이 하게 된다.

개축이든 수리든 두꺼비하우징이 오래된 집을 구조적으로 살만한 집으로 바꾸는 ‘빈집 프로젝트’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데에는 이곳에 건축가가 있기 때문이다. 두꺼비하우징의 공동대표인 건축가 김미정(46·건축공작소 반 대표)씨. 9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95년에 건축사 자격증을 딴 김 대표도 처음에는 건원이나 국제같은,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형설계회사에서 초고층 건물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2006년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자 동료들 몇과 독립하면서 그 김에 오랫동안 고민해온, 어려운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서울 종로구와 은평구에서 가난한 동네의 낡은 집을 고치거나 개축하는 일을 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건축가라면 자기의 철학이 담긴 새 집을 건축하는 데에 흥미를 가질 것 같은데 그는 왜 하필이면 헌 집을 고쳐주는 일에 이렇게 열심인 것일까. “건축가가 드러나는 것보다는 거기 사는 사람이 편안하게 사는 집을 짓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사실 건축가들은 누구나 그럴 걸요. 그런데 건축가는 설계만 하고 시공은 분리되어 있는 현재의 건축법 안에서 잘못된 집을 고쳐서 사람들이 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이 새 집을 짓는 일보다 사람들한테는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 집보다 헌 집을 바로잡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건축법상의 맹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이 사람들이 살기에 불편하다고 여기는 것은 대부분 건축을 모르는 ‘집장사’들에 의해 날림으로 지어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제대로 짓는 단독주택은 소수로만 남아있어서 단독주택 하면 ‘비싸고 좋은 집’과 ‘싸고 허름한 집’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건축법상 건축허가 자체는 건축가 이름으로 받도록 되어 있지만 집을 짓는 시공은 주택의 경우 200평까지도 전문업체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집장사’들이 부도덕한 건축가로부터 도면을 싸게 사거나 명의를 빌려서 건축허가를 받은 후 대충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집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소가 빠지고 외형만 집 모양을 갖춘 주택이 단독 다가구 다세대 주택에 아주 흔하다. 이렇게 날림으로 지은 집은 사람들의 경제수준과 문화적 안목이 높아지면 버려지게 되기 일쑤이다. 그 결과 동네가 쇠락하거나 동네를 쓸어버리고 아파트 단지로 갈아엎어버리는 재개발 재건축을 기다리게 된다.

앞서 연재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듯이 동네가 아파트 단지가 되어 주변과 차단되어 버리면 입주민 하나하나의 삶이 건조해질 뿐 아니라 집단으로서도 집단이기주의만 기승을 부려서 한국사회 전체를 위협하게 된다. 아파트가 자리잡은 땅은 1980년 이전만 해도 6,96만 6,000 ㎡이던 것이 2013년 말 기준 4억 29,03만 6,000㎡로 6배 이상 늘어났다. 80년 이전만 해도 주거지 면적(주거용 주택이 지어진 곳의 면적)의 0.89%를 아파트가 차지했으나 2013년말 기준으로는 22.48%에 이른다. 신도시 개발이 집중된 경기도는 2013년말 기준 주거지 면적의 47.64%를 아파트가 차지할 정도이다.(국토교통부 집계 주거용 건축물 대지면적 현황) 최근 들어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정신적 병리현상이 이런 추세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주거지 면적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이미 지어진 집들이 버려지지 않게 잘 살려서 쓰는 것은 그냥 집 한 채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국토환경 전체를 살리는 일이다. 오래된 구도심은 버려지고 외곽으로 신시가지가 팽창되는 문제는 인구가 늘어나는 어느 도시에서나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이다. 빈집 살리기는 오래된 주거지를 살려서 도시가 쓸데없이 자연환경을 훼손하며 팽창하는 걸 막는다. 일찌감치 강원도 태백과 인제, 충남 서천, 전북 완주 등 전국 곳곳에서 지역을 살리는 건축활동을 해온 건축가 주대관(56) 문화도시연구소 대표는 “대도시 뿐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나 농어촌의 읍면 지역에서도 새로운 주거단지를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주거지와 주택을 살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 지역재생에 필수적이다”고 말한다. 그는 “진심으로 농촌에 들어가 농촌을 살리겠다는 이들이라면 신규 공동주택단지를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기존 주택지를 재생하는 것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한다는 본질에 충실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단독주택지를 살리는 일은 고용 측면에서도 아파트 단지보다 효과적이다. 아파트 단지 경우 몇 명이 수천 채의 집을 설계하고 그게 수많은 지역에서 복제되기 때문에 건설이 기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극히 소수의 전문가와 일정한 수의 노동자에게만 고용효과가 돌아간다. 반면 그만한 수의 단독이나 다가구 다세대 연립주택을 살리는 일에는 훨씬 많은 수의 건축가와 기술자, 건설노동자들이 관여하게 된다. 건설업체도 아파트 단지는 대형업체 몇몇만 살아남게 만들지만 단독주택 다가구 다세대 연립형 주거는 훨씬 많은 중소형 업체들에게 기회를 준다. 한국사회의 공동체의식을 위해서 뿐 아니라 경제 그 자체를 살리기 위해서도 단독주택지를 살리는 일은 중요하다. 동네마다 동네건축가들이 들어와서 지역을 살리는 일에 나선다면 단독주택 하면 ‘비싸고 좋은 집’과 ‘싸고 허름한 집’이라는 양극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지키면서 이웃과 조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주거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한국에도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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