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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그나 카르타

입력
2015.02.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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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 마지막 일정은 세계의 금융중심지인 런던시티(City of London)의 시장이 주관한 만찬이었다. 국왕 만찬만큼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런던시티 시장 만찬은 외국 정상의 국빈방문 시 반드시 포함되는 공식행사다. 런던시티는 런던시(Greater London) 도심 중앙에 동(洞) 단위 넓이밖에 되지 않는 자치도시지만 시장은 영국의 무수한 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Lord(경ㆍ卿)’라는 칭호를 받는다. 여왕도 이 지역에 들어갈 때는 시장의 허가를 받는다고 한다. 런던시티는 런던 경시청이 아닌 별도의 경찰력을 두고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린다.

▦런던시티의 지위가 이처럼 특별한 까닭은 1215년 제정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ㆍ대헌장) 13조에 ‘런던시티는 고래(古來)의 모든 자유를 보유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마그나 카르타는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문서화한 것인 만큼 런던시티의 특별한 지위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대부분 봉건귀족과 왕의 권한을 규정한 마그나 카르타의 63개 조항 중 80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런던시티 지위를 포함해 대략 세 가지다.

▦ ‘자유민은 짐과 짐의 후계자에 의해 자유를 보장받게 될 것’이라는 대목과 ‘25명의 귀족은 왕이 대헌장을 지키는지를 지켜보겠다’는 대목은 입헌군주제와 대의정치의 기초가 됐다. 인류사에 비추어 기념비적인 조항은 39조다. ‘자유인은 동등한 사람들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ㆍ구금되지 않으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않는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이 규정은 이후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선언서, 미국헌법, 유엔인권선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영국국립도서관이 마그나 카르타 제정 800년을 맞아 2일부터 사흘간 링컨 대성당, 솔즈베리 대성당에 흩어져 있던 원본 4장을 모아 전시한다. 전세계에서 추첨해 뽑힌 2,015명만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마그나 카르타는 왕실 재정을 메우려 세금을 물리려던 왕에 대항해 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인 받기 위해 작성한 일종의 양보문서다. 이 문서가 민주주의적 가치로서 귀중한 세계의 유산이 되리라곤 그 시대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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