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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억의 정치와 역사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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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억의 정치와 역사의 극복

입력
2018.01.31 14:5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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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현재에 비쳐지는 과거는 여전히 미완의 모습이다. 역사는 잊혀질 수 없고, 누구도 망각을 요구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상흔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기억의 재구성은 정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역사의 재생은 끊임없는 해석과 논쟁을 부르고, 정치적 양분이 된다. 손쉽게 국민 지지를 끌어 모으고 반대파를 옥죌 수 있는 만능 스테로이드를 마다할 정치인은 찾기 어렵다.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절대적 가치 기준이 적용된다. 용어나 표현 하나라도 이 신성불가침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는 비판이 쏟아진다. 과거사를 두고 공격과 비난이 반복되고, 대중은 분노하고 단결하고 분열한다. 역사를 재생하는 기억의 정치는 그렇게 생명력을 띤다. 일본 역시 가해자의 입장과 합리화 논리 사이에서 정치가 역사와 기억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기제를 재생산한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 위안부 문제를 공식 제기했을 때 일본의 아킬레스건을 잡았다고 여겼을 법하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인권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국제적 관심을 끌고, 나아가 한일관계와 과거사 문제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기대했을 만하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중장기적 차원에서 한국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이루고, 그 다음은 어떻게 나갈지에 대한 뚜렷한 출구 전략이 없었다. 국제사회는 한국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 다음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 했지만, 그 답을 뚜렷이 내놓지 못했다.

일본의 정치적 반격은 만만찮았다. 우리가 공공외교 예산의 절대량을 쏟아 부으며 국제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그보다 훨씬 크고 잘 조직된 네트워크를 가진 일본의 논리를 넘어서기쉽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의 시작은 아쉽게도 주도권이 상실되어 가는 시점에서 이루어졌고, 우리는 출구가 어디인지를 계속 되물어야 했다. 이후 예기치 않게 벌어진 반년이 넘는 외교적 공백기에 한국의 입지와 논리는 더욱 위축되었다. 일본은 급할 게 없고, 국제사회도 한국의 지속적 요구를 더 이상 따뜻하게 보지 않았다.

기억의 정치가 생산적 결과로 이어지려면 역사 재생을 넘어 극복 과정이 필요하다. 화해와 사과는 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궁극의 목적일 수 없다. 위안부 문제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역사적 과거를 극복할 것이고, 이후의 한일 관계의 모습을 제시할 것인가? 이 문제를 풀려면 한일 관계의 큰 그림에 대한 내부적 합의를 먼저 이룰 필요가 있다. 쌓인 설움을 한방에 시원하게 씻어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과연 일본의 사과만 가지고 우리는 불행한 역사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기억의 정치의 한가운데 서 있고, 여전히 그 출구를 찾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기억은 잊혀질 수도 없고 잊혀져서도 안 된다. 불행하지만 실재하는 우리 역사의 일부다. 그래서 그 극복을 가해자의 선의와 아량에만 기댈 수 없다. 일본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입장을 바꾸기는 분명 쉽지 않겠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국제사회의 박수를 받는 ‘대승적’ 일본의 주도로 향후 한일관계가 끌려가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양국관계의 장기 비전을 그리면서 역사 문제를 다루는 발걸음을 먼저 떼는 쪽이 기억의 정치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안의 여러 도전과 비난을 먼저 넘어설 수 있는 정치적 시도와 용기가 필요하다. 외교 운전석에 앉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한 책임 역시 져야 한다. 상당히 오랜 기간 우리는 역사적 과거의 극복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제는 그것을 우리 손으로 찾아야 하고, 걸음을 먼저 옮기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일본과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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