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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우석 사태 교훈 잊은 박기영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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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황우석 사태 교훈 잊은 박기영 임명

입력
2017.08.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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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가운데) 순천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기영(가운데) 순천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고 R&D 예산의 심의와 조정, 성과 평가를 총괄할 차관급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새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05~2006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박기영 순천대 교수라니.

새 정부가 고위 공직자 인사라는 첫 걸음마도 떼지 못한 판에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황우석 사태를 처음 세상에 알리고도 지난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에 맞서다가 직장에서 내쫓겨 새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온 언론인(MBC ‘PD수첩’의 CP였던 최승호 PD)의 영화 ‘공범자들’의 시사회에 다녀온 것이 엊그제 아니던가.

황우석 박사는 대한민국 최고 거물이었다.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 앉은뱅이를 걷게 하겠다고 하니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이 그의 연구를 지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국민들은 환호하였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루이 파스퇴르의 말로 애국심을 고취시킨 황우석은 무소불위였다.

그런 황 박사의 뒤를 받쳐준 것이 박기영 당시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서울대 수의대 황 박사의 연구실로 안내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고 대대적 호응을 얻은 뒤 더욱 황 박사 지원에 열을 올렸다.

나중에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 드러난 후 박기영 보좌관은 문제의 논문에 기여 없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순천대 교수직은 유지했고 지난 총선에서 비례 대표로 민주당 의원이 될 뻔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가짜 연구에 대해 2005년 한 해에만 과학기술부로부터 275억원을 지원받도록 주선한 잘못이 있음에도, 전직 과학자로서 진실을 외면하고 비과학적 감성 정치로 나라를 뒤흔든 막중한 잘못에 대해, 그는 사과하거나 책임진 적이 없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과학 지원 정책을 총괄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2005년 11월 불거진 황우석 사태의 진실이 규명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제보를 받고 취재를 통해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 MBC ‘PD수첩’은 오히려 지지자들의 항의로 프로그램을 접어야 할 지경에 처했다. 연구의 진위에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면 무조건 매국노가 되는 파시즘적인 분위기였다. 필자는 8명의 동료 교수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울대가 논문 검증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모았다. 이렇게 ‘총장에게 드리는 건의문’이 탄생했고 34명의 교수들이 추가로 동참하였다. 서울대는 2005년 12월 12일 문제가 제기된 논문을 검증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하였고 두 달간의 역사적 활동 끝에 11개라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번 박기영 혁신본부장 임명은 황우석 사태 후 10여 년 간 과학계가 어렵사리 쌓아 올린 연구진실성의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부심으로 사는 과학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촛불 혁명으로 다시 태어난 대한민국의 격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촛불 광장에는 과학자들과 교수들도 많았다. 진리를 밝히려는 촛불 시민의 뜻을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제대로 헤아려야 할 것 아닌가.

이현숙ㆍ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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