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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마저 강탈당했다" 남미의 진실 되살린 돈키호테

입력
2015.04.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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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다가서면 늘 잽싸게 한 걸음 멀어지지만

유토피아는 그렇게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1940.9.3~2015.4.13 그는 수많은 멋진 문장을 남겼다. (www.goodreads.com 참조). 그중에는 "내 모든 책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은 한마디로 작고 적은 이름없는 이들의 위대함과 거대한 것들의 하찮음이었다"는 문장도 있다. 한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최일남(83)의 91년 칼럼집 제목이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 위대한 인간의 왜소함>이었다. AP연합뉴스
1940.9.3~2015.4.13 그는 수많은 멋진 문장을 남겼다. (www.goodreads.com 참조). 그중에는 "내 모든 책을 통해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은 한마디로 작고 적은 이름없는 이들의 위대함과 거대한 것들의 하찮음이었다"는 문장도 있다. 한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최일남(83)의 91년 칼럼집 제목이 <왜소한 인간의 위대함, 위대한 인간의 왜소함>이었다. AP연합뉴스

조숙한 정치적 각성

어려서 맞닥뜨린 가난·불평등…

망명지서 역작 저술

우루과이 출생… 남미 잇단 폭정에

아르헨 이어 스페인으로 도피

정의 위한 편향적 역사관

미국 향한 윤리적 편파성 살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우루과이 출신 저널리스트, 작가다. 3부작 불의 기억은 그의 역작 가운데 하나다. 그는 책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수세기에 걸쳐 라틴아메리카가 빼앗긴 것은 금과 은, 초석과 고무, 구리와 석유만은 아니었다. 기억 또한 강탈당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존재를 말살한 자들은 망각을 강요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공식 역사는 세탁소에서 방금 찾아온 제복을 입은 영웅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다. 다만 작가로서 빼앗긴 아메리카의 기억, 특히 사랑이 경멸에 내몰린 땅 아메리카의 기억을 되찾는 데 일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 땅과 이야기를 나누고 비밀을 공유하고 싶다.” 불의 기억(박병규 옮김, 도서출판 따님).

자신의 책을 설명한 저 구절은 사실 그가 지향했던 삶 전체를 집약한 글이라 할 만하다. 그는 ‘기억’을 인간 윤리와 책임의 바탕이라 여겼고, 바른 기억 위에서만 삶과 역사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겼다. 기억할 것과 잊을 것을 입맛대로 선별하고 유포해온 권력의 기획에 맞서 꺾이고 구부려진 수많은 기억들을 발굴하고 복원했다. 그리고 거듭거듭, 끈질기게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기억을 수탈당한(당하고 있는) 모든 약자의 영혼 속에 스미기를 바랐다. 그가 4월 13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erman Maria Hughes Galeano)는 1940년 9월 3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14세 무렵부터 좌파 주간지 ‘El Sol’에 카툰과 글을 기고했고, 21세엔 독립 주간지 ‘마르차(Marcha)’ 편집장(61~64년)이 됐다. 일간지 ‘에포카(Epocha)’의 주간(64~66년)으로도 일했다.

그의 조숙한 정치적 각성은 남미 현대사의 소산이었다. 그의 청년기는 남미 경제가 세계 자본주의에 본격 편입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식민지시대(1492~1825)와는 다른, 근대적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구조화하는 시기였다. 70년대를 풍미한 종속이론의 판단처럼 농업과 원자재 수출 주도의 종속적 남미 경제는 독자적 산업 성장을 제약했고, 정치권력은 성장 과실을 독점하며 부패와 권위주의, 독재와 쿠데타로 타락해갔다. 갈레아노는 가난 탓에 중학교 2년 뒤 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생계 때문에라도 조숙해야 했다.

그 무렵인 1971년, 갈레아노는 대표작 수탈된 대지(박광순 옮김, 범우사)를 출간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잘린 혈맥(Open Veins of Latin America)이라는 원제의 저 책은 제국주의자들의 수탈과 그들이 은폐ㆍ날조한 남미 역사의 복원기다. 잡지 기고 외에 은행 창구업무, 간판 제작, 책 편집 등 온갖 일로 낮 동안 돈을 벌며 4년여 간 자료를 모았고 약 90일 밤 동안 원고를 썼다고 그는 2006년 7월 미국 비영리 독립 잡지 ‘In These Times’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거의 잠을 안 잤어요. 커피를 강물처럼 마셔대 나중엔 커피 알러지가 생길 정도였죠. 다행히 이젠 커피를 즐길 수 있어요.” 그는 광적인 커피 애호가였다.

수탈된 대지는 2009년 4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제5차 미주정상회의에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2013년 작고) 전 대통령이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첫 만남 때 선물한 바로 그 책. 아마존 판매 랭킹 5만4,295위였던 수탈된 대지는 다음 날 하루 동안 약 100만 권이 팔려 다음날 곧장 2위에 올라 화제가 됐고, 북미를 비롯한 세계에 그의 이름과 저서들이 알려졌다. 남미의 여러 좌파 대통령들과 친구처럼 지낸 만년의 갈레아노는 저 일을 두고 “차베스의 선의였겠지만 오바마가 읽지도 못할 스페인어 판을 선물한 건 ‘좀 짓궂은(a bit cruel)’ 짓이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짓궂기’는 그의 글이 더했다. 2013년 그의 마지막 책 그 시대의 아이들(The Children of the Days)의 ‘발견(discovery)’항목은 “1492년 남미의 원주민들은 그들이 인디언이고, 아메리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72년 우루과이 대선에서 승리한 보르다베리 정권은 좌파 게릴라 진압을 빌미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국회를 해산, 군사독재를 시작한다. 정치범과 반체제 지식인 납치와 고문 살해가 자행됐고, 그 와중에 갈레아노도 투옥된다. 추방령으로 아르헨티나로 망명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문화 주간지 ‘크리시스(Crisis)’를 창간한다. ‘크리시스’는 주류 문화와 직업 문화인들의 입장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시민들의 문화와 목소리를 담았던 혁신적 잡지였고, 큰 인기를 끌었다. 갈레아노는 “우리는 (우리가 아는) 리얼리티를 말하기보다 (시민들이 아는)리얼리티에 대해 듣고자 했다. 우리는 문화에 대한 가장 훌륭한 견해가 비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76년 3월 아르헨티나 군부는 이사벨 페론을 축출하고 저 악명 높은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시작했고, 갈레아노는 다시 스페인으로 망명한다.

82년 1권이 출간된 불의 기억은 스페인 망명지에서, 조국이 민주화하고 남미에 민주주의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하던 84년까지 쓰여졌다. 1,000쪽이 넘는 저 방대한 책에서도 그는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서부터 1984년 멕시코 나야리트 산간의 한 공동체 주민들이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마을 이름을 얻기까지의 근 500년 역사를, 그 시간 속에 감춰져 있던 수많은 인물과 사건과 사연들을 이야기했다.

그가 수탈된 대지의 남미를 넘어 미 대륙 전체로 불의 기억을 확장한 것은 아르헨티나의 시인 후안 젤만의 조언 덕이었다고 말했다. “알래스카에서부터 칠레까지 모든 아메리카는 하나의 아메리카”라는 게 젤만의 지론이었다. 시간의 목소리(Voice of Time)(김현균 옮김, 후마니타스) 출간 직후인 2006년 5월 ‘Democracy Now’인터뷰에서 그는 “(콜럼버스 이전의) 긴 아메리카 역사에서 남미도 아메리카다”라며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미합중국에 의해 유괴당했다”고 말했다. 시간의 목소리에서 갈레아노는 중남미 인들의 미국(불법) 이민,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이민 정책을 이렇게 풍자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자도 여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은 브라질 해안에 상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천연두나 홍역, 독감이나 그 밖의 역병 보균자였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코르테스와 피사로는 멕시코와 페루의 정복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워킹비자(working papers)가 없었다(…) 메이플라워호의 필그림들은 매사추세츠 해안에서 되돌려 보내져야 했다. 이민 쿼터가 다 찼기 때문이다.”

역사를 향한 그의 관점은 광대한 대신 성글었다. 또 노골적으로 편파적이었는데, 역사의 균형과 차별적 정의를 위해 학문적ㆍ정물적 균형을 포기한 결과였다. 함축적 어조에 담긴 명료하고 전투적인 메시지는, 저널리스트로서 또 지식인으로서 미덕이라기보다는 결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2014년 브라질 북페어의 한 인터뷰에서 수탈된 대지를 두고 “지금 다시 그 책을 읽으면 내가 쓰러질지 모르겠다. 전통적인 좌파적 어투가 내겐 너무 무겁다”고 말한 것을 두고 미국의 여러 주류 매체들, 예컨대 뉴욕타임스의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그의 관점이 복잡해졌다”와 같은 전향적인(?) 해석들이 분분했던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불의 기억 머리말에서 그는 “나는 객관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런 글은 원하지 않았고, 또 불가능했다. 냉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편을 들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확실한 문헌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비록 이야기는 내 방식대로 풀어냈지만,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그의 윤리적 편파성은 최강국 미국을 향할 때 특히 매서웠다. 2006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라크를 침략한 부시 정부를 ‘전쟁기계’라 규정했다. “(이 전쟁기계는) 매일 2,600만 달러를 써가며 누군가를 살해하고 세계의 자원을 먹어대고 있다. 이게 진짜 테러리스트 조직이다. 부시의 말은 (역설적으로) 옳다. 우리는 상시적으로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받고 있다.”(Democracynow.org, 06.5.19)

오바마 당선 직후 승리를 축하하며 “오바마가 머물 백악관이 흑인들의 노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그가 기억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던 갈레아노는 2013년 9월 ‘신성한 전쟁(Blessed War)’을 운운하며 시리아 공습을 결정했을 때 이렇게 썼다. “노벨상이 없던 450년 전, 세계의 악이 석유가 아니라 금과 은을 좇던 시절에 스페인의 휴머니스트이자 법학자 후안 기네스 드 세풀베다(Juan Gines de Sepulveda)도 ‘필요하고 윤리적으로도 정당하다’며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옹호했다.”

그는 2009년 10월 ‘Monthly ‘review’인터뷰에서 15세기와 21세기 세계의 부와 권력 집중 현상을 거론하며 “역사는 결코 작별을 고하는 법이 없고, 늘 ‘나중에 보자’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낙관주의자였다.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조구호 옮김, 책보세)의 ‘돈키호테’장에서 그는 체 게바라가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한 구절- 저는 다시 발뒤꿈치로 로시난테의 갈비뼈를 느낍니다. 저는 제 방패를 들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을 인용한 뒤 “항해자는, 자신을 인도하는 별들을 결코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할지라도, 항해를 계속한다”고 글을 맺었다. 유토피아에 대한 가장 멋진 알리바이를 제공한 것도 그였다. “한 걸음 다가서면 늘 잽싸게 한 걸음 멀어지지만(…), 유토피아는 그렇게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It is to cause us to advance.)”

그의 유토피아는 인간 해방이었다. 인류가 저마다의 가치로 존중 받고 조화하는 세상, 그 이상을 그는 ‘세속의 무지개(earthly rainbow)’라 불렀다. 그리고 무지개의 빛을 가로막는 모든 이념들 -인종주의 남성주의 군국주의 엘리트주의-을 극복해야 한다고(Monthly Review 2008. 12.25), 그러자면 먼저 잊히고 차단당한 ‘기억’들을 되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2006년 미국 시카고의 ‘In These Times’인터뷰에서 기자는 “당신은 현실이 곧 운명은 아니라고 했지만, 도저히 변화가 불가능해 보일 때 어떻게 냉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존엄의 기억과 더불어 사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예컨대 이곳 시카고는 ‘메이데이’의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대륙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단결권을 자축하며 성대한 축제를 벌이던 그 일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를 들어 월마트는 어떻습니까?”

만년의 그는 “미련도 후회도 없다. 지금의 나는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와 실패의 소산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최윤필<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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