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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임금격차 만년 1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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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임금격차 만년 1위 왜?

입력
2016.03.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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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남녀 임금격차
OECD 남녀 임금격차

#“여성이 많다고 꼭 평등한 회사냐 하면 그게 아닌 게 여기는 연봉테이블이 없어요. 자기 재량껏 협상을 하고 들어오게 되는데, 이것도 편견이겠지만,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성들이 좀 더 자기주장을 죽일 것을 어릴 때부터 요구 받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협상을 할 때도 그렇게 가격을 쎄게 안 불러요. 남성과 여성의 연봉 차이가 심하면 4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도 나요. 인사 사수한테 “법에 저촉되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사수가 하는 말이 “직무가 다르다고 보고해 버리면 된다”는 거예요.”(32세 여성, 중소기업 정규직 인사담당자)

#“4년째 근무 중인데 남녀차별로 그만두고 싶어요. 학력, 자격증이 동일한 조건인데 신입남자보다 급여가 적어요. 여자는 7, 8년 일해야 남자와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임금이 ‘자격수당’ 명목으로 몇 백 만원 차이가 나는데, 회사에 문제제기하니까 꼬우면 저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같은 팀의 신입사원보다 내 임금이 적고 차이가 나니까 정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더라고요.”(100인 미만 기업의 건설 사무직 여성)

각기 한국여성민우회 류형림씨가 지난해 열린 여성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발표한 인터뷰 사례와 민우회 여성노동팀에 접수된 고용상 성차별 상담 사례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를 말해주는 가장 단적인 지표로 인용되곤 하는 성별 임금격차가 더 이상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직접 차별 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상식에 균열을 내는 증언들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부동의 1위다. 최신 통계에서는 36.3%로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7,000원밖에 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 일본과 격차가 10%포인트나 되는 독보적 1위라 반전을 바라는 것 자체가 민망한 상황이다. 가장 차이가 적은 나라는 뉴질랜드로 6.2%. 남자가 100만원을 벌 때 한국 여성은 63만7,000원, 뉴질랜드 여성은 93만8,000원을 버는 셈이다.

남녀간 임금 차이는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한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던 몇 십 년 전에는 남녀간 인적자본의 차이, 즉 교육과 훈련기회의 부족이 성별임금격차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2009년 여성이 앞지르기 시작한 대학진학률은 2014년 현재 여성 74.6%, 남성 67.6%로 7%포인트까지 남녀 차이가 더 벌어졌다. 교육과 훈련의 격차가 사라진 현재, 기존의 원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별 임금격차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윤자영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전히 성별로 분리된 직종 및 직위가 비정규직, 하청과 같은 서로 다른 고용형태와 결합되면서 동일한 자격으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남녀가 동일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논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특히 “사회서비스와 같이 새로 등장하고 있는 저임금 여성 집중 직종이 임금격차를 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여성이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하던 일이 노동시장에서 직종화되었을 때 임금이 낮게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여성은 10인 미만 사업장에 전체 여성 임금근로자의 35.7%가 몰려 있어 대규모 사업장일 경우 해당이 되는 사회보호장치와 임금협약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보육 인프라 미비와 살인적 강도의 장시간 노동이 경력 단절을 출산과 육아의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강요한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탈 후 재진입은 저임금 직종이나 시간제 일자리로 직결된다. 미국 칼럼니스트 에린 글로리아 라이언의 표현처럼 경력 단절은 “읽던 책에 책갈피를 꽂아 뒀다 나중에 이어 읽는 게 아니라 낯선 외국어로 바뀌어 있는 책을 첫 장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독서”와 같기 때문이다.

윤 연구위원은 “동등한 자격이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덜 받는 임금차별이 여전한 것도 남녀 임금격차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로 균등한 처우를 명시하고 있지만, ‘같은 일, 낮은 임금’은 사라지지 않고 더 교묘한 방식으로 엄존하고 있다.

물론 성별을 이유로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노동관청에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꼬우면 나가라”는 회사를 사표 쓸 각오 없이 신고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신고하더라도 동일가치노동을 인정받기도 어렵다. 윤 연구위원은 “직종간 성별분리가 심한 국내 특성상 노동의 가치를 비교하기 어려운 데다 사회서비스 직종은 생산성을 측정하기 어려워 객관적인 임금 산출이 쉽지 않다”며 “남성들이 많은 생산직, 사무직에 비해 사회서비스직의 임금이 낮은 이유”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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