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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 아이 보내면 128만원 혼자서 키우면 15만원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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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 아이 보내면 128만원 혼자서 키우면 15만원 지원

입력
2014.07.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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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미혼모 지원정책의 모순

키우기보다 입양이 유리한 구조

양육의지 20대가 더 강한데 지원은 10대 미혼모보다 적어

목경화(왼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와 회원 정경진씨가 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협회 사무실 앞에서 미혼모로서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목경화(왼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와 회원 정경진씨가 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협회 사무실 앞에서 미혼모로서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지금은 보호시설에서 지내니 버틸 수 있지만 앞으로 이곳을 나가게 되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돌이 갓 지난 아들과 모자보호시설에서 7개월째 생활하고 있는 미혼모 김혜주(23ㆍ가명)씨. 지난 1년여 동안 김씨는 우리 사회에서 홀로 아이 키우는 일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에겐 아이 아빠도, 아이를 돌봐줄 다른 가족도, 직장도 없다. 아이 아빠가 떠난 뒤 용기 내어 홀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했지만 김씨의 다짐은 자주 흔들린다.

관계 끊긴 부모 때문에 수급자 탈락

직장에서 만나 2년 간 동거하던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김씨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남자친구와 함께 키우자 약속했다. 하지만 임신 8개월째가 되자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 아이는 네 마음대로 하라”며 김씨를 떠났다. 의지할 곳 없었던 김씨는 모자가족 시설의 문을 두드렸고 아이를 낳아 키웠다.

모자가족시설과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는 하지만 홀로서기는 녹록하지 않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학원에서 간호조무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 김씨의 한달 수입은 40만원 안팎. 저소득 한부모 지원수당(15만원)과 시설에서 나오는 지원금(5만원), 취업훈련 수당(10만~25만원)이 전부다. 최장 18개월간 지낼 수 있는 시설 규정상 김씨는 11개월 뒤 떠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 수입으로는 월세 얻기도 부족하다. 임대주택 입주는 하늘의 별따기다. 국민임대주택(월 4만~39만원) 우선공급대상자에 한부모 가정이 포함돼 있지만, 불과 2%만 한부모의 몫이어서 늘 경쟁이 치열하다.

김씨 모자의 수입은 최저생계비(102만원ㆍ2인 가구) 기준에 훨씬 못 미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도 받지 못한다. 부모와 만난 지 3년이 넘었고 한두 달에 한번 연락할까 말까 한 관계지만 서류상 엄연히 소득 있는 부모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되지 않는다. “꼭 수급자가 되고 싶으면 부모를 만나 관계 단절을 입증하는 서명을 받아오라”는 동사무소 담당자의 말에 김씨는 할 말을 잃었다. 특히 대다수 청소년 미혼모들은 임신, 출산을 거치며 부모와 극심한 갈등 끝에 연을 끊고 살기 십상이지만 김씨처럼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때문에 미혼모들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당국은 “기초생활보장제의 근간을 흔든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김씨가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를 받기도 쉽지 않다. 법원에 친자녀임을 인정받는 자녀 인지 소송, 양육비 청구소송, 양육비 이행확보 소송을 내야 하는데 결론이 나려면 보통 1년이 넘게 걸린다. 김씨는 “아이를 버린 아빠에게 아이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싫었고, 절차도 까다로워 포기했다”고 말했다.

김혜영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의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실태조사’(2010) 에 따르면 조사대상 미혼모의 80%가 생부에게 출산사실을 알렸지만, 양육비를 요구한 것은 26%, 양육비를 받은 경우는 4.7%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미혼모들이 양육비 청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로 “자녀의 양육권을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 양육비 청구소송을 모르거나 절차가 번거로운 점, 소송에 걸리는 시간 등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내년 3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비양육 부모의 소재파악과 재산조사, 채권추심업무까지 할 수 있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지만, 중요한 것은 행정당국의 이행 의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설 보내면 128만원, 혼자 키우면 15만원

전문가들은 정부의 미혼모 지원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경우보다 아이를 시설에 맡기거나 입양 보낼 때 오히려 지원이 커지는 점을 꼽았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남윤인순 의원실의 분석에 따르면 아이를 아동복지시설에 맡길 경우 시설에는 월 평균 128만원이 지원되고, 가정위탁을 보낼 경우 월 평균 57만원이 지원된다. 입양을 보낼 경우 입양가정에 월 15만원(중증 장애아동은 62만7,000원)의 아동양육수당, 입양기관에 입양수수료 100만~270만원이 지급된다.

그러나 정작 미혼모에게 지원되는 아동양육비는 월 7만(미혼모가 25세 이상인 경우)~15만원(24세 이하인 경우)에 불과하다. 미혼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입양을 보내거나 시설에 맡기는 것을 독려하는 구조인 셈이다. 미혼모자보호시설에서 29개월 된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박윤미(26ㆍ가명)씨는 “어느 시설에 들어가야 할까 알아봤지만 전화를 받는 곳마다 입양할 것인지부터 물어보더라”고 털어놨다. 보건복지부와 여성부는 아동양육비를 최고 월 50만원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재정당국은 “미혼모만 양육비를 인상해야 할 근거가 없다”며 부정적이다.

성인 미혼모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소년 미혼모는 의료비 50만원을 쓸 수 있는 ‘고운맘카드’, 이와 별도로 120만원의 의료비를 쓸 수 있는 ‘맘편한카드’를 지원받는다. 아동양육비 액수도 청소년 미혼모가 약 2배로 많다. 한 미혼모자보호시설 관계자는 “10대 미혼모는 아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20대 이상에서는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20대 이상 미혼모 지원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학교에 다니는 미혼모들은 학업을 계속하면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하고, 직장에 다니는 미혼모들은 미혼모라는 이유로 고용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문화와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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