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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삶의 중심에 존재하는 죽음

입력
2014.12.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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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두 편의 다큐를 연이어 봤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목숨이다. 한 편은 76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 편은 평균 생존 기간 21일이라는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는 이들의 삶을 다룬 영화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두 영화는 모두 이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죽음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법, 이 세상과 작별하는 법에 대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오는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따스한 노년의 일상을 보여준다. 7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의 삶에도 분명 맵고 쓴 시간이 지나갔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달달한 일상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하루하루를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 순간 온전히 누린다. 서로에게 꽃을 꽂아주고, 낙엽을 쓸다 장난을 치고, 곱게 차려입고 손을 잡고 걷는다.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늘뿐인 것처럼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할아버지는 영원한 사랑을 이룸으로써 삶을 완성한다.

영화 목숨에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삶의 끝자락에 서있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마침내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영화는 담담히 보여준다. 위암 말기의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는 여러 면에서 내 마음을 흔들었다. 엄마를 암으로 잃었는데 이제는 남편마저 말기암에 걸린 상태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암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엄마와 남편이 이렇게 힘들고 아팠던 거구나 이해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이의 육체적 고통까지 고스란히 함께 앓고 싶어 하는 마음. 사랑의 원형은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두 영화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삶의 중심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먼저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임을 말한다. 죽음의 예측불가능성과 생명의 유한성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삶에 더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유한하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도,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 이별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에야 겨우 삶과 관계의 유한성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이와 짧은 순간에 마음을 나눈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토록 찰나이면서도 깊은 교감이 가능해지는 건 아마도 우리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당신과 나누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밀도 높은 만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난 해 폐암 선고를 받은 후 3주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너무 빠른 이별이어서 우리는 영화 속 가족들처럼 이별을 준비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고마운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보냈다. 사십 몇 킬로그램으로 남은 아버지의 육신을 화장하던 날. 소각로에서 일하는 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참 걸리니까 식사하고 오세요.” 우리는 그 분의 단호한 제안에 떠밀리듯 근처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아버지가 소각로 안에서 한 줌 재로 변해가는 동안 우리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켜 더운 밥을 먹었다.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에 몰두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황망함을 숟가락에 담아 떠넘겼다. 배가 불러올 무렵에야 아버지의 부재가 처음으로 실감났다. 두 번 다시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 이 밥상에 둘러앉은 이들도 하나 둘 사라질 것이며, 그 일이 나이 순으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며칠 전까지 반복되던 식탁의 평범한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행위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일상은 그 남루한 옷을 벗어 던지고 빛나는 얼굴을 드러낸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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