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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검찰은 ‘권력의 저승사자’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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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검찰은 ‘권력의 저승사자’라는데...

입력
2016.11.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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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눈으로 거악을 감시’ 모토

성역 없는 수사로 국민 신뢰 특검도 없어

리쿠르트 수사 땐 정권 붕괴시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 및 특검 정국이 예고되면서 ‘금권정치를 가로막는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일본 검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매의 눈으로 거악(巨惡)을 감시한다’는 모토를 가진 일본 검찰은 역대로 총리를 비롯한 최고위 공직자나 정경유착 관련자, 실세정치인 등을 잡아들이는 혁혁한 전과로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쿄지검 특수부는 법대로 수사하고 비리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법정에 세우는 ‘권력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최근 ‘전성기가 지나 신화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한국의 재야법조계에선 우리 검찰을 비판할 때마다 등장하는 비교 대상이다.

일본에서도 7년 전인 2009년 검찰이 현직 총리를 수사한 전례가 있다. 민주당 정권이 출범한 지 한 달 만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위장 정치헌금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하토야마 총리에 대해 서면조사를 했다. 물론 이때는 총리가 직접 개입한 흔적이 부족했고 사회적 분노도 심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도쿄지검 특수부가 최고위층 비리수사를 전담했기에 ‘현직이냐 전직이냐’는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총리가 수사대상이 되느냐’는 규정도 사실상 없다. 또 특별검사제도도 일본에는 없다. 특검이라는 방식이 기존 검찰수사를 못 믿고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스러울 때 별도의 수사팀을 만들자는 것인데 그런 인식이 일본에선 약하다. 그만큼 검찰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가 비교적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는 지방검찰청마다 있는 특수부가 일본에선 도쿄와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등 단 3곳만 있을 정도로 그 위상이 특별하다. 최고의 엘리트 검사로 채워진 도쿄지검 특수부는 2000년대 초만 보면 유죄율 99%에 40명의 검사, 80여명의 검찰사무관이 충원된 막강한 진용을 과시했다.

70년대 최고 실세 다나카 전 총리도 구속

도쿄지검 특수부가 ‘최강의 수사기관’으로 솟은 결정적 계기는 희대의 게이트로 불린 1976년 록히드사건이다. 의혹의 중심에 전후 일본정치 최고의 거물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있었다. 다나카는 총리 퇴임 후에도 자민당 최대 파벌을 거느리며 실질적으로 일본정치를 지배한 인물이다. 이 사건은 미국의 세계적인 항공기 제작사인 록히드사가 항공기 판촉을 위해 일본 정부 고위층에 거액의 뇌물을 준 게 골자다.

발단은 1976년 2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다국적기업 공청회였다. 록히드사의 회계담당자가 “일본, 독일 등에 거액의 뇌물을 뿌렸다”고 증언한 것이다. 여론이 들끓었지만 정치권은 진상규명 요구를 회피했다. 이에 도쿄지검 특수부가 내사에 들어갔다. 당시 후세 다케시(布施健) 검찰총장이 “무죄판결이 나오면 내 배를 가르겠다”고 장담하는가 하면, 부하검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내가 질 테니 사표 낼 걱정은 말라”고 독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수사과정에서 다나카 전 총리가 재임 당시 자택에서 전일본공수(ANA)항공사가 록히드 비행기를 구입하도록 장관에게 지시했고, 성공보수로 현금 5억엔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사 6개월 만에 다나카를 구속하는 초유의 사태로 발전했다. 수사팀은 다나카 체포 전날까지 법무장관에 보고하지 않을 정도로 철통 보안을 지켰다.

도쿄지검은 막후 실세뿐 아니라 1989년 살아있는 권력도 무너뜨렸다. 가와사키시 공무원이 인력컨설팅업체 리쿠르트코스모스의 상장 전 주식을 증여받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게 단초였다. 초기엔 단순 독직뇌물사건으로 보였지만 도쿄지검은 리쿠르트사 임직원 조사과정에서 정관계에도 주식이 뿌려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결국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당시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자민당 간사장 등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다케시타 총리의 ‘금고지기’였던 인물이 자살하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총리 사임으로 정권이 무너졌다.

오자와 정치자금 불기소로 명성 퇴색

도쿄지검 특수부는 1990년대 들어 정계 최고 거물인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부총재를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구속했지만,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상처도 남겼다. 가네마루를 한차례 소환조사도 없이 약식 벌금형으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시민들이 도쿄지검 청사에 페인트와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손하기도 했다.

명성이 퇴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0년 정계 최고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沢 一郎) 민주당 간사장을 불기소 처분하면서부터다. 정치자금 관련 장부를 허위 기재토록 한 사건이었지만 검찰의 불기소에 시민단체들이 자체 재판행사를 하는 등 신화 몰락의 계기가 됐다.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2010년)’란 책이 등장해 “증거가 있으면 기소하던 특수부가 시나리오를 설정해 조작하는 집단으로 변질했다”고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출입기자 출신이 쓴 이 책에선 검사들의 수사역량이 떨어졌고 외부압력에 대항하는 기개가 옛날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일본 검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우리 검찰보다 낫다는 평가는 여전하다. 한국 검찰도 정권의 핵심부를 수사한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정권 말기였고 언론이나 여론반발이 심해진 뒤에야 마지못해 움직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에선 아직도 TV 인기드라마의 대표적 소재로 도쿄지검의 정의로운 검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기대가 살아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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