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책과 세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106세 日 의사의 조언

알림

[책과 세상]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106세 日 의사의 조언

입력
2018.05.25 04:40
23면
0 0
'앞으로도 살아갈 당신에게'를 '살아갈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로 남긴 히노하라 시게아키. 서울문화사 제공
'앞으로도 살아갈 당신에게'를 '살아갈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로 남긴 히노하라 시게아키. 서울문화사 제공

스위스에서 최근 안락사한 104세의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우아하고 씩씩하게 죽는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찜찜하다. 나이 들어 박수 받으며 떠나려면 죽음을 반기는 연기라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1911년 태어난 일본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는 105년 10개월을 살고 지난해 7월 노환으로 숨졌다. 그는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말을 ‘앞으로도 살아갈 당신에게’라는 책으로 남겼다. 눈 감기 6개월 전까지 일본 공영방송 NHK와 인터뷰한 대담집이다. ‘죽는 게 무섭지 않나요?’가 첫 질문. 히노하라는 “무섭다. 당신이 그렇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무섭다”고 답한다. 그의 솔직한 고백은 읽는 이를 책 앞에 바짝 다가앉게 만든다. ‘진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아서다.

히노하라는 100세 넘어서까지 의사 가운을 벗지 않고 나이듦을 진지하게 탐색한 ‘존경 받는 어른’이었다. 1970년 일본 적군파가 일본항공 비행기를 공중에서 납치한 요도호 사건의 생존자이기도 했다. 그가 들려준 일화. 적군파는 승객으로 위장하고 있다가 “우리는 이 비행기를 하이재킹(항공기 납치) 한다!”고 외치며 납치범으로 돌변했다. 인질 석방 협상이 타결돼 나흘간의 인질극이 끝나갈 무렵, 한 승객이 물었다. “그런데 하이재킹이 뭐예요?” 인질범도 답을 몰랐다. 일본 역사상 최초의 항공기 납치라, 하이재킹이라는 말이 생소할 때였다. 히노하라가 말했다. “하이재킹범이 하이재킹을 모르다니 어이가 없네요.” 인질과 인질범들이 모두 웃었다. 히노하라가 강조한, 삶과 관계를 바꾸는 유머의 힘이다.

앞으로도 살아갈 당신에게

히노하라 시게아키 지음∙홍성민 옮김

서울문화사 발행∙168쪽∙1만1,800원

책은 ‘싫어하는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인간은 고독한 존재인가요’ ‘젊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같은 질문에 히노하라가 답하는 형식이다. 정답은 없다는 걸 아는 듯, 히노하라는 그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쾌하진 않지만, 곳곳에서 통찰이 빛난다.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것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몰랐을 발견이다”,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라 생각해도, 어떤 싸움터에서도 반드시 꽃은 핀다”, “숨을 거두면서 죽음을 조각할 수는 없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그 죽음의 생김새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같은 문장에서다. 히노하라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책에서 성경 구절을 ‘매우’ 자주 인용한다. 책을 염두에 두고 짓지 않아 글이 정교하지는 않다. 책의 미덕은 ‘아파 봐야 안다’ 따위의 꼰대 지적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히노하라는 무너지는 육신을 견디며 두 달에 걸쳐 약 20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그렇게 애써 만든 책을 1,2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히노하라의 너그러운 선물인 셈이다. “여러분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모아, 다시 이 여행을 계속하지 않겠어요? 갑시다. 킵 온 고잉!” 마지막 인터뷰는 이렇게 끝난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