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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양성평등과 총선 전략

입력
2015.11.0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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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다른 모든 중요 현안을 집어 삼킨 상태에서 여당의 싱크탱크 산하 ‘비전 2016 위원회’는 내년 총선 필승 전략으로 양성평등과 환경, 서민정당을 내세울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교과서 국정화는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여당과 재계가 연내 통과를 목표로 밀어붙이겠다는 노동개혁 입법이나 원전 추가 건설을 저지하는 11일의 영덕 원전 주민투표가 어찌 덜 중요하겠는가.

이런 긴급한 사안들마저도 정부가 만들어 낸 교과서 국정화의 파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은 고고하게 내년 총선의 ‘비전’을 도모하고 있고 더욱이 그 내용이 양성평등, 환경 같은 미래적 가치라니 역시 선거 전략 하나는 한 발 앞서 가는구나 싶다. 이제까지도 선거 때만 되면 경제민주화와 복지, 녹색성장 등 진보적 의제들을 선점하거나 전유해 온 여권이 아니던가. 물론 최근 경북 출신 남성들과 결혼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두드러지게 더 길다는 통계까지 나와 화제가 된 판에, 유독 그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는 여당이 양성평등을 내세우겠다고 하니 솔직히 잘 되겠냐는 의구심부터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양성평등은 제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새로운 정당의 인상을 심어주는 데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최근 캐나다의 젊은 새 총리 트뤼도가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해서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 그 예이다. 능력이 중요하지 남녀가 중요하냐, 보여주기식 인사라는 진부한 논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양성평등을 현실로 가장 간명하게 보여주기에 남녀동수만한 것은 없다. 내각 구성의 의도를 묻는 언론에 대한 트뤼도의 대답 역시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이라는 단순명료한 것이었다. 그 정도 수준에서 양성평등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라면, 1970년대와 다른 것도 있음을 보여주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높은 자리를 남녀가 나눈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양성평등을 실현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마저 실현할 것 같지도 않으니 여당이 양성평등을 총선 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에 먼저 우려가 든다. 일단 양성평등을 여성 배려와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수상쩍다. 최근 제3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이나 성교육 표준안에서 드러났듯이 보수적인 가족관에 기초해 일찍 결혼해 일찍 애 낳을 것을 압박하는 생애 주기 국정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성평등 정책은 표면적으로 여성 배려를 내세워도 결국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는 권리 침해 정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현 정부는 양성평등이라는 명분을 소수자 권리를 침해하는 데 악용해 온 사례도 있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양성평등기본법에 성소수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며 대전시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내용 삭제를 요청했다. 이 같이 현 양성평등기본법은 이전 여성발전기본법과는 달리 사실상 남성중심적인 사회 구조의 개선이라는 의지와 방향성을 상실하였다. 기계적인 남녀 동수를 내세워 여성혐오발언을 일삼는 단체에까지 공익기금을 지원하는 상황이니, 양성평등을 총선에 내세우려는 것이 과연 시대정신을 반영하려는 몸짓이기나 한지, 실제로는 보수단체 규합을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 드는 게 무리가 아니다.

양성평등이 과연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남녀 관계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용어인지도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의견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양성평등을 위해 애써온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을 기억한다면,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로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누군가의 존재를 배제해선 결코 안 된다. 양성평등이라는 용어에 의미가 있으려면 그 동안 여성이 떠 안았던 돌봄의 역할을 남녀 구분 없이 맡는 방향으로 가야지, 기존의 구분과 차별을 강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총선 전략으로 양성평등을 내세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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