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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정지용 (6.20)

입력
2018.06.2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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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에게 '밤'이 각별했던 까닭을 알 듯도 하다. 그는 일제와 분단-전쟁의 시대를 회색인으로 살았다.
시인 정지용에게 '밤'이 각별했던 까닭을 알 듯도 하다. 그는 일제와 분단-전쟁의 시대를 회색인으로 살았다.

시인 정지용의 에세이 ‘밤’은 “거룩한 신부의 옷자락소리 없는 걸음으로” 오는, 창의(創意)로 충만한 밤의 찬가다. 그는 빛의 비어 있음 즉 어둠을, 읽지 않고 두어 놓은 서재의 책과 책을 뽑아낸 뒤의 빈자리에 비유했다.

“값진 도기는 꼭 음식을 담아야 하나요? 마찬가지로 귀한 책은 몸에 병을 지니듯이 암기하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성화와 함께 멀리 떼어 놓고 생각만 하여도 좋고 엷은 황혼이 차차 짙어 갈 제 서적의 밀집대형 앞에 등을 향하고 고요히 앉았기만 함도 교양의 심각한 표정이 됩니다. 나는 나대로 좋은 생각을 마주 대할 때 페이지 속에 문자는 문자끼리 좋은 이야기를 이어 나가게 합니다. 숨은 별빛이 얼키설키듯이 빛나는 문자끼리의 이야기···(···) 레오 톨스토이가 주름살 잡힌 인생관을 페이지 속에서 설교하거든 그러한 책은 잡초를 뽑아내듯 합니다. 책이 뽑혀 나온 빈 곳, 그러한 곳은 그렇게 적막한 공동(空洞)이 아닙니다. 가여운 계절의 다변자(多辯者) 귀또리 한 마리가 밤샐 자리로 두어도 좋습니다. 우리의 교양에도 가끔 이러한 문자가 뽑혀 나간 공동만의 빈 하늘이 열리어야 합니다.”

등단한 지 10년쯤 뒤인 1937년 박용철이 가려 엮은 첫 시집에 담긴 글이니, 늦어도 30대 초ㆍ중반에 쓴 글일 테다. 그는 대표 시 ‘향수’의 배경이었을 충북 옥천에서 1902년 6월 20일 태어나 12세에 결혼하고 14세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박종화, 홍사용 등과 어울리며 시를 짓기 시작했고, 1919년 3ㆍ1운동에 연루돼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23년 일본 교토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에 입학해 29년까지 유학했고, 1926년 유학생 잡지 ‘학조’에 ‘카페 프란스’로 등단했다. 귀국 후 김영랑 박용철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또 모더니즘의 산실이던 ‘구인회’에서 활동했고, 39년 ‘문장’ 추천위원으로 청록파 시인들을 뽑았다. 그는 46년 좌익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가 정부 수립 후 보도연맹에 끌려들어 전향 강연을 하고 다녀야 했다.

그는 항일시도 친일시도 쓰지 않았다. 당연히 그건 무척 힘겨운 선택이었다. 48년 ‘조선시의 반성’이란 글에서 그는 일본 경찰뿐 아니라 “문인협회에 모였던 조선인 문사배에게 협박과 곤욕”을 치른 일을 언급했다. 저 ‘밤’이 아마도 그를 견디게 했을 것이다. 그는 1950년 납북 도중 미군 폭격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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