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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박근혜의 개헌론 #그런데_최순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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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박근혜의 개헌론 #그런데_최순실은

입력
2016.10.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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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개헌 찬성 국면전환용 의심

정치권도 계파별 이해 따라 천차만별

국민이 빠져 있는 개헌론은 성공 못해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개헌론을 제기하는 도중 야당 의원들이 최순실 의혹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개헌론을 제기하는 도중 야당 의원들이 최순실 의혹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추진을 공식화한 것을 보면서 역대급 유행어가 떠올랐다.“참 나쁜 대통령”.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개헌론을 주장했을 때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던진 말이다. 그는 “대통령 눈에는 선거 밖에 안 보이느냐, 국민이 불행하다”는 한마디로 개헌론을 백지화해 버렸다. 이명박정부가 임기 말에 개헌 드라이브를 걸 때도 친박은 “박근혜 죽이기”라고 반발했다.

지난 대선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 대통령은 집권 후에 다시 입장을 바꿨다. 정치권 일각에서의 개헌론 제기에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블랙홀에 빠져들 것”이라고 하고 “개헌 얘기를 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이제 전임 대통령들과 똑같이 임기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간의 모순은 “지난 3년8개월 동안 고심해 왔으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로 어물쩍 넘긴다. 남이 할 때는 색안경 쓰고 삿대질하더니 내가 하니 로맨스라고 우기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지금은 북핵과 경제를 소홀히 해도 되고 블랙홀에 빠져도 상관없는 시기냐는 비아냥이 나올 만도 하다.

정치인과 지식인 사이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의 개헌 찬성률도 높다. 하지만 막상 개헌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견해가 너무나 다양하다. 정부 형태만 고칠지 국민의 복지, 통일 등 미래 비전까지 담아 완전히 뜯어 고칠지부터 생각이 다르다. 전면 개정을 하자니 쟁점이 많아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고 권력구조만 바꾸면 기본권 확대와 같이 중요한 문제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설혹 권력구조만 바꾸기로 의견이 모아진다 해도 이견은 여전하다. 현재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개헌론은 ‘권력 게임’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이해관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친박계와 비박계, 친노계와 비노계, 제3지대 등 크게 5개 세력의 셈법이 각자 처한 위상에 따라 다르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주도하겠다고 나섰으니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달 친박계가 개헌론의 군불을 땔 때부터 감지됐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개헌론을 공식화한 데 이어 친박 중의 친박이라는 정종섭 의원이 구체적인 개헌 일정까지 제시하자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많았다.

정권 재창출을 담보할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청와대와 친박계로서는 정치적 활로를 여는 돌파구로 개헌만한 게 없다고 여겼음직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끌어들여 이원집정부제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정치 경험이 적고 세력도 없는 반 총장과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는 친박으로서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청와대도 시인했듯이 개헌론은 추석 때 이미 주도면밀하게 밑그림이 그려졌다. 당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가 터지고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30% 안팎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할 시점이다. 급기야 ‘최순실 게이트’로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이반할 움직임을 보이자 국면전환용으로 서둘러 개헌의 깃발을 세웠다는 것은 누구라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가 아무리 부정해도 최씨 비리 의혹의 출발점은 박 대통령이다. 최씨가 호가호위를 했든, 아니면 박 대통령이 ‘전횡’을 알고도 묵인했든 대통령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개헌은 청와대가 먼저 들고 나오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더구나 개헌론이 퇴임 후 영향력 유지와 레임덕을 막으려는 정치적 꼼수라면 성공은커녕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개헌은 대선에 임박한 시기가 아니라 시간 여유를 갖고 사회적 숙의과정을 거쳐야 성공할 수 있다. ‘국민’이 빠져 있는 개헌 방정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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