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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롤스로이스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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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롤스로이스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입력
2017.05.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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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의 젊은 나이로 롤스로이스의 비스포크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브라이든 디자이너. 사진 롤스로이스 모터카 제공
26세의 젊은 나이로 롤스로이스의 비스포크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브라이든 디자이너. 사진 롤스로이스 모터카 제공

롤스로이스 모터카가 서울에서 영감을 얻어 특별히 제작한 ‘고스트 서울 에디션’을 지난 19일 서울 청담 전시장에서 공개했다. 이에 앞서 15일엔 ‘레이스 부산 에디션’도 함께 발표했다. 이 두 차는 한국을 테마로 만든 최초의 롤스로이스 모델로 각각 도시의 특징을 차의 디자인에 담았다.

롤스로이스 모터카는 지난해 총 4,011대의 차량을 판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판매량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국내 판매량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53대, 올해도 지난 4월까지 28대가 팔리면서 한국 역시 중요한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롤스로이스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원 오프(One off)’ 차를 만든다. 기본 모델에 고객이 주문한 대로 디자인하고 사양을 맞춰준다. 이를 비스포크라고 한다. 비스포크는 원래 맞춤 정장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소비자의 개별 취향과 주문에 맞춰주는 서비스를 통칭한다.

고스트 서울 에디션이 공개되던 날, 이 차를 디자인한 마이클 브라이든(Michael Bryden) 비스포크 부문 선임 디자이너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롤스로이스가 만들어지는 굿우드에서 날아온 그는 21세부터 5년간 롤스로이스의 비스포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비스포크 디자인은 무엇인지 물었다.

지난 19일 일반 공개된 롤스로이스 고스트 서울 에디션. 순수와 희망을 상징하는 안달루시안 화이트(Andalusian White)로 도색됐다
지난 19일 일반 공개된 롤스로이스 고스트 서울 에디션. 순수와 희망을 상징하는 안달루시안 화이트(Andalusian White)로 도색됐다

조두현(이하 조): 한국에 처음 왔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한가요?

마이클 브라이든(이하 마): 어젯밤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면서 도시가 꽤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심으로 들어올수록 스카이라인이 높아지더군요. 호텔에 가까워지자 멀리서 조명이 화려하게 켜진 남산 서울타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자마자 안심했죠. 고스트 서울 에디션을 디자인하면서 한국 딜러로부터 남산 서울타워에 대한 자료를 받아 굿우드에서 해석하고 작업했습니다. 실물을 보니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고스트 서울 에디션 C 필러 쪽에 코치라인 페인터가 직접 손으로 그려 넣은 남선 서울타워와 기와지붕 문양. 사진 조두현 기자
고스트 서울 에디션 C 필러 쪽에 코치라인 페인터가 직접 손으로 그려 넣은 남선 서울타워와 기와지붕 문양. 사진 조두현 기자

조: 고스트 서울 에디션만의 비스포크 특징은 무엇인가요?

마: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C 필러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서 보세요. 남산 서울타워와 정자의 기와지붕을 추상적으로 나타낸 문양이 보일 겁니다. 서울 에디션만의 마크죠. 그리고 태극기에서 영감을 얻은 빨강과 파랑 코치라인을 굿우드의 장인이 직접 손으로 그려 넣었습니다. 인테리어 색 조합에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수많은 테스트와 시행착오가 있었죠. 야경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서울의 밤하늘을 담아냈습니다.

레이스 부산 에디션 C 필러에 새겨진 문양. 사진 김훈기 기자
레이스 부산 에디션 C 필러에 새겨진 문양. 사진 김훈기 기자

조: 부산 에디션을 상징하는 격자 문양은 한국 사람으로서 확 와 닿진 않네요. 전 개인적으로 광안대교나 갈매기 등이 떠오릅니다.

마: 그 문양은 전통과 현대의 조합을 뜻합니다. 롤스로이스는 오랜 전통을 가진 회사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브랜드입니다. 한창 성장 중인 부산도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죠. 한국의 전통 문양인 격자무늬와 해운대 마린 시티의 현대적인 모습을 조합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지요.

남산 서울타워 문양은 피아노 블랙 (Piano Black) 베니어로 마감된 센터페시아와 뒷좌석 피크닉 테이블에도 각인돼 있다
남산 서울타워 문양은 피아노 블랙 (Piano Black) 베니어로 마감된 센터페시아와 뒷좌석 피크닉 테이블에도 각인돼 있다

조: 서울 에디션을 상징할 다른 문양 후보는 뭐가 있었나요? 예를 들어 남대문이나, 한강 등이 떠오릅니다.

마: 다른 후보는 없었습니다. 여러 상징물을 두고 선택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남산 서울타워와 정자를 생각했어요. 다양한 디자인의 반복 과정만 있었죠. 어떤 디자인이 이 두 상징물을 잘 조합해서 표현할 것인지에 집중했어요. 수많은 스케치 중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인테리어 역시 어떤 소재와 색의 조합이 서울의 밤을 가장 잘 표현했는지가 기준이었습니다.

검은 가죽 바탕에 이와 강렬하게 대비되는 아크틱 화이트(Arctic White)를 실내 곳곳에 가미했다. 화이트-블랙 투톤을 기반으로 무겔로 레드 시트 파이핑과 코발토 블루 스티치를 더해 색의 조화를 이뤘다
검은 가죽 바탕에 이와 강렬하게 대비되는 아크틱 화이트(Arctic White)를 실내 곳곳에 가미했다. 화이트-블랙 투톤을 기반으로 무겔로 레드 시트 파이핑과 코발토 블루 스티치를 더해 색의 조화를 이뤘다

조: 얼마 전 한국엔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롤스로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면 어떤 제안을 하겠습니까?

마: (웃음)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저희에겐 대통령도 고객 중 한 분입니다. 주문 제작 방식은 다른 고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차를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물어봐야겠지요. 차에서 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옵션을 담을 것인지, 어떤 디자인을 원하는지 하나하나 파악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영국 굿우드로 초청하고 싶지만, 바쁘시다면 서울에 쇼룸이 있고 인천에도 저희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으니 그곳을 통해 상담부터 진행할 겁니다.

조: 방탄 제작도 가능한가요?

마: 롤스로이스에서 직접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방탄차로 개조하는 협력사가 있어 연결해 줄 수는 있습니다.

고스트 서울 에디션의 측면에는 태극 무늬처럼 코발토 블루(Cobalto Blue)와 무겔로 레드(Mugello Red) 색의 코치라인이 두 줄로 가로지른다
고스트 서울 에디션의 측면에는 태극 무늬처럼 코발토 블루(Cobalto Blue)와 무겔로 레드(Mugello Red) 색의 코치라인이 두 줄로 가로지른다

조: 2년 전 싱가포르 독립 50주년 기념으로 디자인한 고스트 SG50 에디션이 기억납니다. 그 차엔 어떤 비스포크 특징을 담았나요?

마: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머라이언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헤드레스트에 자수로 새겨 넣고, 서울 에디션의 남산타워처럼 코치 라인 페인터가 머라이언을 직접 그려 넣었습니다. 싱가포르 국기에서 영감을 얻어 빨강을 많이 활용했지요.

조: 만약 런던을 주제로 디자인 주문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표현할 건가요?

마: (웃음) 아,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디자인은 하나의 과정이자 협업입니다. 우선 콘셉트를 정해야겠지요. 전통적으로 갈 것이냐, 현대적으로 갈 것이냐 혹은 도심을 강조할 것이냐, 자연을 살릴 것이냐 등을 정하고 협의해야 합니다. 지금 문득 든 생각인데, 런던은 최근 ‘패션 위크’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패션을 모티브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무제한으로 다양한 디자인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롤스로이스 고스트의 실내 천장에는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를 수놓았다
롤스로이스 고스트의 실내 천장에는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를 수놓았다

조: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비스포크 디자인이 있나요?

마: 비스포크는 철저히 고객 주문으로 디자인되기 때문에 디자이너 개인의 스타일을 자유롭게 담기엔 부적합합니다. 롤스로이스에는 비스포크 말고도 컬렉션 모델이 있습니다. 패션이나 음악 등 특정 테마에 영감을 받아 만든 한정판 모델이지요. 그 모델을 디자인할 때 전 제 안에 있는 욕구를 발휘합니다. 비스포크 주문을 받을 때 고객에게 컬렉션 모델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러면 고객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조: 당신이 롤스로이스를 사려는 고객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차를 사겠습니까?

마: (함박웃음을 지으며) 생각만 해도 흥분됩니다. 저라면 블랙배지 레이스(Wraith)를 주문할 겁니다. 위는 검정, 아래는 실버 투톤 컬러여야 합니다. 빛을 받았을 때 찬란하게 쫙 퍼지도록 차체 표면은 메탈릭으로 마감하고, 실내엔 검정 가죽으로 포인트를 넣을 겁니다. 전 여행 가방 세트를 디자인하기도 했는데, 블랙배지 전용 여행 가방도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네요. 트렁크 실내 라이닝도 가죽으로 마무리할 겁니다.

마이클 브라이든 디자이너가 그가 디자인한 고스트 서울 에디션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이클 브라이든 디자이너가 그가 디자인한 고스트 서울 에디션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 롤스로이스 입사 전에 슈퍼요트 디자인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습니다. 요트와 차의 비스포크 디자인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마: 제 경험상 슈퍼요트를 가진 사람은 대게 롤스로이스도 한 대 갖고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라는 차이만 있지 이동수단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규모만 다를 뿐 비스포크 디자인 개념은 매우 흡사합니다. 슈퍼요트 역시 차를 주문하는 과정과 같지요. 슈퍼요트를 가진 고객 대부분은 비스포크 주문 경험이 많아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조: 롤스로이스만의 비스포크 강점은 무엇입니까?

마: 롤스로이스는 거의 모든 차가 비스포크라고 보면 됩니다. 고객이 쇼룸을 방문해 주문을 넣는 순간 비스포크는 시작됩니다. 고스트나 레이스, 던 등 새로운 모델을 만들 때부터 고객의 비스포크 주문을 유념해 디자인합니다. 쉽게 말해 롤스로이스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캔버스라고 보면 됩니다. 고객은 그 캔버스에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죠. 인증과 규제 때문에 못하는 건 있어도 저희(롤스로이스)가 못하는 건 없습니다. 한계가 없는 것, 그게 롤스로이스의 자랑입니다.

조: 당신이 꼽는 최고의 비스포크 디자인은 무엇입니까?

마: 고객 정보라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최근 팬텀이 단종되기 전 거의 마지막에 주문이 들어온 쿠페 모델이 있었습니다. 코치 라인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조: 선임 디자이너의 일과는 어떤가요?

마: 전 굿우드에 있는 비스포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곳엔 21명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있지요. 출근하면 고객의 최근 주문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 사항에 맞게 제안서를 만들어 고객에게 보내지요. 과정마다 다릅니다. 어떤 건 테마일 수도 있고, 어떤 건 스케치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최종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스케치가 현실이 되도록 장인들과 꾸준히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각각의 팀이 맡은 임무를 잘 실행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기자와 비스포크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 중인 마이클 브라이든 디자이너
기자와 비스포크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 중인 마이클 브라이든 디자이너

조: 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마: 근무 환경 자체가 굉장한 영감입니다. 굿우드 곳곳엔 고풍스러운 저택 단지와 함께 경주마와 자동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트랙도 있습니다. 영국 남쪽 해안가에 자리해 자연경관도 아주 뛰어나죠. 이런 환경은 무의식적으로 디자인의 영감을 줍니다. 평소엔 자동차뿐만 아니라 가구와 건축 분야의 디자인도 살핍니다.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 분석이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공부합니다.

조: 휴일이나 퇴근 후엔 뭐 하세요?

마: 전 굿우드 근처에 살고 있는데 자연환경이 아주 좋습니다. 개와 산책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죠. 쉴 땐 충분히 쉽니다. 그래야 일도 잘됩니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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