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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이라도 벌어보려 했는데…” 청춘 울리는 ‘번역사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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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이라도 벌어보려 했는데…” 청춘 울리는 ‘번역사기’ 기승

입력
2017.02.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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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기준 장당 1만원… 대학생들 솔깃

“번역 수준 낮아” 등 핑계로 돈 안 줘

계약서 없다 보니 마땅한 구제방법 없어

사기죄 성립 어려운 점 업체서 악용

“반드시 계약서 작성·회사 평판 확인해야”

서울 명문대 학생 A씨는 지난해 12월 용돈벌이를 위해 번역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며칠 밤을 새운 끝에 35만원어치 분량의 번역을 마쳤지만 대행업체는 “(번역을 의뢰한) 고객이 결제를 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번역료 지급을 미루기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인터넷에 업체 이름을 검색해본 A씨는 망연자실했다. 비슷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글이 줄줄이 나온 것.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서도 내봤지만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라 관할 대상이 아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31일 본보가 해당 업체에 전화했더니 “법적으로 걸리는 게 없지 않느냐”는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개강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A씨는 아직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을 울리는 ‘번역 사기’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도 (번역을 의뢰한) 고객에게 돈을 받지 못했다”거나 “번역 수준이 낮다”고 변명하며 돈을 주지 않는 건 기본에 속한다. “휴가 중이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돌라대다가 잠적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번역물을 몇 장 단위로 쪼개 여러 명에게 조금씩 맡기면서, 일감을 주기 전 실력 검증용이라고 둘러대는 ‘샘플번역 사기’ 등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거래 초반 소액을 지급하며 신뢰를 쌓고는 나중에 목돈을 떼먹는 금융투자 사기 방식도 동원된다. 지난해 7월 이탈리아어 번역 대가로 약속한 350만원을 받지 못했다는 B씨는 “처음 30만원짜리 일을 주고받을 땐 문제없이 입금돼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업체명과 피해 사례를 공유하기도 한다. 2011년 개설된 ‘번역사기피해자모임(번사모)’ 가입자는 1,000명에 육박하며, 최근에도 피해자들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추가 피해를 막고자 “지급 기일을 미룰 경우 당장 작업을 중단하라” 등 유의사항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번역 아르바이트의 속성상 일단 피해를 당하면 마땅한 구제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긴급 업무’ ‘재택 근무’ 등으로 포장해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감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 피해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 기준 장당 1만원 안팎인 번역료는 최저시급(올해 기준 6,470원)을 훌쩍 뛰어넘어 당장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이 급한 대학생 등의 입장에선 앞뒤 가리지 않을 만큼 솔깃하다. 전문번역업체가 일정기간 이상 경력 증명과 고난도 자체 테스트에 응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사기업체들은 대개 간단한 테스트 외엔 자격 요건을 내걸지 않아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단속 사각지대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사기죄 입증이 쉽지 않아 경찰 수사 자체가 어렵고, 죄가 밝혀지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다. 일부 업체는 번역 사기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질 때쯤 업체 이름을 바꿔가며 운영을 계속하고 있어 비슷한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 상당수는 피해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아예 번역료 받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문정구 법무법인 한길 변호사는 “처음부터 번역료를 주지 않을 계획이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사기죄가 성립되는데, 이것을 밝혀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업체가) 악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윤미 대한번역개발원 번역사업부 팀장은 “번역에 앞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고, 회사 규모와 연혁, 실적, 평판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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