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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거짓이고 파국만이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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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거짓이고 파국만이 진실인가

입력
2015.01.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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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려는 교수, 살리려는 목사

두 인물 대화만으로 구성된 서사

팽팽한 균형 이루다 매정한 결말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ㆍ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144쪽ㆍ1만1,000원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ㆍ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144쪽ㆍ1만1,000원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는 로맹 가리의 문장은 유명하다. 평생을 문학에 복무해온 노년의 거장에게 독자가 요구하는 가외의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 명제에 대한 참ㆍ거짓 여부의 판정일 것이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던가. 끊임없는 희망의 갱신에 지쳐버린 이들에게 로맹 가리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희망은 거짓이며, 파국만이 진실인 것 아닌가 의혹을 품고 있는 독자에게, 그러므로, 60년을 더 살고도 삶과 세계를 향한 희망의 단서를 끝내 발견하지 못한 주인공을 만나는 일은 참혹에 가깝다.

코맥 매카시(82)의 2006년도 작품 ‘선셋 리미티드’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의 대표작 ‘로드’와 여러모로 닮은 소설이다. 주인공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밀고 나간다는 점, 희망이 소거된 묵시론적이고 파국적인 세계, 그런 세계에 정면으로 혹은 묵묵히 맞서는 남성적인 인물들. 서부 장르소설을 고급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 ‘서부의 셰익스피어’는 ‘선셋 리미티드’에서 ‘로드’의 형식과 주제를 보다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최소의 주변인물도 없이 주인공 두 사람만이 등장해 대화만을 나누는 극 형식의 서사, 간결하고 건조한 문장들이 창출하는 여백의 공간에서 출렁거리던 감성 대신 철학적 사변과 논쟁이 조성하는 첨예한 갈등과 이내 끊어져 버릴 듯한 팽팽한 긴장, 희망의 씨앗조차 거세해버린 대담한 결말 등이 이 짧고도 독특한 소설의 특징을 이룬다.

소설은 뉴욕 흑인 게토에 있는 공동주택건물의 한 방안에서 시작한다. 흑과 백이라고만 일컬어지는 두 노인, 즉 흑인 목사와 백인 교수가 방 안에서 나누는 대화와 논전이 소설의 전부다. 백인 교수는 그날 아침, 자신의 생일을 맞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급행열차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자 했으나, 흑인 목사가 그를 구해버렸다. 결단을 방해받은 백인 교수는 다소 짜증이 난 상태로 흑인 목사의 방 안에 붙들려 있다. “삶 한가운데 있는 죽음” “죽음 주위를 뱅뱅 도는” 삶을 살았던 흑인 목사는 살인을 저지른 후 복역한 교도소에서 칼부림에 연루돼 몸이 두 동강이 난다. 몸을 꿰매 붙이는 대수술을 받고 수술실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은 그는 그날 이후 새로운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백인 교수를 구한 것은 신의 뜻이었다.

허무주의로 가득한 ‘선셋 리미티드’의 세계는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닮았다. 코맥 매카시의 비관주의는 위험하게도 설득력이 강하다. 문학동네 제공
허무주의로 가득한 ‘선셋 리미티드’의 세계는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닮았다. 코맥 매카시의 비관주의는 위험하게도 설득력이 강하다. 문학동네 제공

철저한 무신론자인 백인 교수는 자신에게 생의 의지를 불어넣으려 설득을 멈추지 않는 흑인 목사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의 집요함에 탈출이 여의치 않다. 40여 년 간 일주일에 두 권씩, 수천 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가 믿었던 “책과 음악과 예술” “문명의 기초”였던 그것들은 아주 부서지기 쉬운 것들이었다. “서구 문명은 결국 연기가 되어 나치의 강제수용소 굴뚝으로 날아가버렸는데 얼이 빠져서 그걸 알지 못한 것”이었다.

인물들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특히 흑인 목사가 그렇다. 자애로운 얼굴로 뻔한 설교를 앞세우지 않는 대신, 익살과 능청, 기탄 없지만 삶과 경험의 결정체인 하층민의 낮은 언어로 백인 교수의 자살을 철회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끈질기다. 그러나 “세상은 기본적으로 강제노동수용소이고, 이 수용소의 노동자들, 순진해빠진 노동자들은 제비뽑기로 매일 몇 명씩 끌려가 처형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백인 교수 또한 만만치 않다. “사람들이 세상을 낫게 만들려고 노력할수록 세상은 더 나빠졌습니다. 예전에는 이 격언에 예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고통을 가지면 급행열차에 몸을 던질 수 있느냐고 물으며 흑인 목사는 “만일 선생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게 선생이 이미 잃어버린 것 때문이 아니라면, 어쩌면 그건 선생이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백인 교수는 마침내 폭발한다.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포기하는 겁니다. …나는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기를 바라요. 영원히. 그리고 나도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라요. 공동체가 없다.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따뜻해집니다. 정적, 암흑. 고독. 평화. 그 모든 것이 심장박동이 한 번만 뛰고 나면 찾아온다니.”

“젠장” 말고는 할 말이 없는 흑인 목사에게 백인 교수는 “지금은 무(無)의 희망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 희망에 매달리고 있고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결말은 매정하다.

저 도저한 절망에 반박할 말을 신의 이름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것. 한 손은 흑인 목사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백인 교수의 손을 잡은 채 치열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이 격조 있는 소설은 결국 한 쪽으로 기우뚱한다. 매카시가 73세에 쓴 소설이다. 반전의 도모를 기대하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독자는 그 결말의 엄중함에 짓눌릴지도 모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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