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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문화 탄압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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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문화 탄압 ‘블랙리스트’

입력
2017.06.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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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13일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의 특정 문화인ㆍ단체 지원 배제 지시에 따라 문체부가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어 이를 실행했고 그 사례가 무려 444건에 이르렀다. 블랙리스트 적용 대상은 연극, 영화, 출판 등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있었지만 문화예술위원회가 담당하는 공연 등 예술분야가 410여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례 중에는 장애인문화동호회 같은 소외계층 지원사업에서 일부 단체를 배제하거나 예술인의 어머니에게 주는 ‘장한 어머니상’을 특정인에게 주지 못하도록 한 경우까지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실체가 드러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검찰과 특검 수사를 거치며 이미 여러 차례 눈길을 끌었지만, 실태를 확인할 때마다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문화예술계의 자유분방하고 창의에 넘치는 활동을 북돋워도 모자랄 정부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반정부 성향이라는 판단만으로 창작 활동이나 문화 향유를 적극적으로 가로막은, 독재정권에서나 볼 사건이기 때문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사법 당국의 수사와 이번 감사원 감사를 통해 그 실체가 상당 부분 드러난 상태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재판에서 핵심 피고인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적이 없다” “노구를 이끌고 봉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변호인들은 “좌파 세력이 문화정책을 직권남용으로 잘못 접근한 정치적 사건”이라고 한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와 관련해 진상 조사를 약속하면서 ‘지원은 하되 간섭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정부ㆍ지원기관ㆍ문화계가 협약을 맺는 방안을 제시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 후보자도 14일 인사청문회 인사말에서 “문화를 이념으로 재단하고 정권 유지의 도구로 만들어 우리의 사고 폭을 제한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퇴색시킨 것이 지난 정부가 우리 사회에 남긴 큰 상처”라며 “공정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정권의 어처구니 없는 탈선만이 문제가 아니다. 방식이야 어떠하든, 입맛에 맞게 문화를 단속하려는 충동은 어느 정치권력에나 있게 마련이다. 이런 비민주적 문화계 탄압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관련 공직자의 각성과 더불어 정부의 문화예술계 지원 절차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원 과정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기고 필요하다면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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