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국제시장 VS 언브로큰… 현대사를 보는 한·미 시각차

알림

국제시장 VS 언브로큰… 현대사를 보는 한·미 시각차

입력
2015.01.05 17:51
0 0

현대사 관통하는 삶 그린 두 영화

국제시장은 역사를 집단 경험으로

언브로큰은 특별한 사건으로 그려

비슷한 느낌 다른 공감 느끼게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한국과 미국의 영화인들은 현대사를 기억하는 데 있어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그린 ‘국제시장’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며 1,0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편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로 잡혀갔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육상 스타의 실화를 다룬 ‘언브로큰’이 7일 개봉한다. 소재가 다르고 주제도 서로 다르지만 양국의 메이저 배급사가 상업영화를 통해 현대사를 어떻게 그리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란 온 한 가족의 삶을 그린다. 아버지와 헤어진 뒤 일찌감치 가장의 책임을 떠맡은 덕수(황정민)가 돈 벌러 독일 탄광과 베트남전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가 죽을 뻔한 이야기, 흥남 철수 때 헤어진 여동생과 뒤늦게 재회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 ‘언브로큰’은 미국 올림픽 대표 선수 출신인 루이 잠페리니(잭 오코넬)가 2차 세계대전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겪은 고난을 그린다. 전투기 고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에 추락하고도 살아 남은 그는 47일간 망망대해를 표류한 끝에 일본군 포로로 잡혀가 2년 4개월간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을 견뎌낸 뒤 기적처럼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이 일생에 한 번 겪기도 힘든 일을 여러 차례 겪은 사람의 여정을 주인공의 시점으로 따라간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모두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1994)를 떠올리게 한다. 세 영화는 화법과 톤이 사뭇 다르다. 미국 현대사의 연표를 훑듯 별다른 정치적 관점 없이 영화의 배경으로만 사용하는 ‘포레스트 검프’와 달리 ‘국제시장’은 현대사의 장면들을 한 세대의 고생과 희생을 강조하는 시대적 장치로 활용한다. 주인공 덕수가 독일과 베트남에 간 건 동생들의 진학과 결혼을 위해서다. 이 영화에서 서민들에게 한국의 현대사란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역사다.

덕수가 관통해 온 한국의 역사는 그와 같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체험하는 공감의 현장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덕수는 유일한 또래 친구 달구(오달수)와 독일 탄광, 베트남전을 함께 경험한다. 두 사람의 공통된 경험은 공감을 끌어내는 데 중요한 장치다. ‘나도 저 시절 고생 많이 했지’ 또는 ‘우리 아버지도 그 당시 비슷한 일을 겪으셨지’ 하면서 관객은 덕수의 역사를 공감한다.

언브로큰
언브로큰

‘언브로큰’은 철저히 개인의 경험으로 한정한다. 덕수처럼 부양할 가족이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역경을 집단의 한 세대의 공통적 체험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육상선수로서 자아를 실현하려 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전쟁포로가 돼 악마 같은 일본군의 학대를 버틴다. 군에 입대한 것부터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잠페리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개인적인 체험이다.

덕수는 “힘든 세월에 태어나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전쟁 세대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이 대사는 세대 간의 차이와 간극을 강조한다. 반면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언브로큰’은 이런 식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잠페리니가 겪었던 일이 워낙 특수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낸 정신력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도 그는 ‘우리 덕에 지금 세대가 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두 영화 모두 꽤 보수적이다. ‘국제시장’은 베트남전 참전을 둘러싼 복잡 다단한 문제를 희석시킨 채 ‘한국이 베트남에 도움을 준 것’만 부각한다. 달콤한 로맨스와 댄스 파티의 낭만이 독일 광산 근무의 고통을 지워버리듯 베트남전도 양민을 구해낸 자랑스러운 추억이 살육의 현장을 망각하게 한다. 국제정치에 대해 논하는 영화가 아닌 만큼 해당 문제에 대해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역사 인식이란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남의 나라(베트남)에서 전쟁하면서 달러를 벌었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이 영화의 역사 인식에 대해 비판했다.

‘언브로큰’의 역사적 관점도 비슷한 내용의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는 잠페리니가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겪는 지옥 같은 실상을 고발하는데 잠페리니와 수용소 감시관 와타나베의 관계를 피해자와 악마의 대립항으로만 그려 식상한 인상을 준다. 굳이 정치적 흑백논리 때문이 아니라도 고문과 폭력에 대한 과도한 할애는 원작에 담긴 용서와 박애정신을 희석시킨다. LA타임스는 “굉장히 인상적인 요소가 많은데도 ‘언브로큰’은 불완전하고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