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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증거 없다”며 특검 주장 배척한 이재용 집행유예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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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증거 없다”며 특검 주장 배척한 이재용 집행유예 선고

입력
2018.02.05 19: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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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13부는 5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1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 수감된 지 353일만에 석방됐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180도 달랐다. 무엇보다 범죄 성립의 전제가 된 삼성의 경영권승계 작업을 위한 대정부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명시적ㆍ묵시적 청탁’이라는 특검 주장이 법적으로 무리하다는 판단인 셈이다. 이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미르ㆍK스포츠재단 지원 행위에 대한 무죄 선고로 이어졌다. 유죄로 판단한 부분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금(뇌물 혐의) 89억원 중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원 등과 여기서 파생된 횡령 혐의뿐이고, 이 부분 재산국외도피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은 ‘가공의 틀’이며, 최씨 모녀 지원은 권력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이 부회장 변호인단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셈이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형사재판의 원칙인 증거주의에 터잡은 결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거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범죄사실을 유죄로 판단하려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부정한 청탁에 대한 정황증거만 있을 뿐 어떤 물증도 없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범죄 구성의 전제와 조건이 깨지자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그리고 파생된 다른 혐의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등의 업무수첩 내용, 청와대의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문제 검토 흔적과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 등의 합병 과정 부당 개입 등 특검 주장에 따른 일반적 법 감정과는 거리가 있다. ‘0차 독대’에 대한 안봉근 전 비서관의 진술을 구체적이라고 보면서도 독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점 등에도 의문이 따를 만하다. 다만, 이번 항소심이 ‘촛불혁명’과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던 국민 감시 아래 이뤄졌다는 점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삼성 봐주기’를 의심하기도 어렵다.

과거 일부 뇌물 사건의 경우 정황증거만으로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도 했고, ‘국정농단’ 세력과 재벌의 유착 혐의를 다룬 재판이라는 점에서 여론재판으로 흐를 가능성도 컸다. 재판부가 “이 사건에서는 전형적 정경유착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언급한 것도 그런 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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