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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으로 한국 읽기] 장관이 사라졌다

입력
2015.03.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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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 곧 떠나는 류길재 장관이 최근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자기 부처의 구조적 한계 지적이 주된 의도였겠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강경파의 외교ㆍ안보 라인 장악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 처지가 새삼 서글퍼 한 얘기일 성싶기도 하다. 하지만 무력감에 빠진 각료가 비단 류 장관뿐이랴. 사진은 올해 초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류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솔직히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 곧 떠나는 류길재 장관이 최근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이렇게 토로했다고 한다. 자기 부처의 구조적 한계 지적이 주된 의도였겠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강경파의 외교ㆍ안보 라인 장악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 처지가 새삼 서글퍼 한 얘기일 성싶기도 하다. 하지만 무력감에 빠진 각료가 비단 류 장관뿐이랴. 사진은 올해 초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류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관이 안 보인다. 없는 건 아니다. 투명해진 거다. 자발적 소외다. 돼봤으니 그걸로 됐다. 어차피 상사는 묻지 않는다. 다 안단 착각 속에서다. 정치인이 쉬었다 가는 곳이 내각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과거에는 일반 국민도 어느 부처 장관이 누구인지 알 정도였는데, 지금은 당 대표인 저도 장관의 이름을 다 못 외울 정도로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관들의 심기일전을 촉구하는 의도였겠지만 정곡을 찌른 말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그럴진대 일반 국민은 보나마나다. (…) 분명한 건 이 정권에 몸담은 장관 대다수가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기용된 각 부처의 전ㆍ현직 장관급 인사가 32명에 달하지만 국민의 뇌리에 남은 경우는 드물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한 정책을 만들어 내거나 이 정책이 옳다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장관도 보기 어렵다. 대통령이 틀렸다고 당당하게 맞서거나 끝까지 설득하려는 장관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국민 눈에는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장관들로만 채워져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유독 이 정권의 내각이 무기력한 일차적인 책임은 장관들에게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소신 있는 인물이 안 보인다. 나이가 많다 보니 진취성이 떨어지고 생동감도 부족하다. (…)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박 대통령에게 있다. 사람을 고를 때 능력이나 소신보다는 충성심을 우선시하는 용인술이 이런 현상을 낳게 했다. 예전에 눈여겨봤던 사람을 적어 놓은 수첩에서만 골라 쓰다 보니 인재 풀도 협소하다. 만기친람식 국정운영 스타일은 장관들을 주눅들게 한다. 오죽하면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만 받아 적는다는 ‘적자 생존’ 내각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겠는가. “솔직히 이 자리는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는 퇴임을 앞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말에는 자조와 무력감이 짙게 묻어 난다. 박 대통령은 이번 개각에서 친정 체제를 대폭 강화했다. 장관 18명 중 3분의 1을 친박 정치인으로 채워 ‘친위내각’으로 만들었다. 당에서 차출한 장관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인 내년 1월 중순까지 사퇴해야 하는데 벌써들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 (…) 이러니 총선 경력 관리용으로 장관을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0개월짜리 시한부 내각’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 말로만이 아니라 인사권 등 실질적 권한을 위임하고 업무성과에 따른 책임을 엄정히 물어야 한다. 국정의 무게 중심은 내각에 두어져야 한다. 책임총리, 책임장관에 박근혜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다.”

-장관 이름 몇 명이나 아십니까(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이충재 논설위원) ☞ 전문 보기

“부장이 부원들과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다. 상석을 차지하고 앉은 뒤 호탕하게 외친다. “자, 맘놓고 시켜. 난 짜장면.” 이 대목에서 “탕수육”을 외친 부원이 있다면 그는 없는 눈치를 고단한 ‘내무생활’로 갚아나가야 할 터다. (…) 부장을 하면서 제일 겁나는 게 그런 거였다고 지인은 말했다. 부장이라고 내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왜 없겠나. 그럴 때 누구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다른 의견을 내주길 바란 적도 많았다는 거다. 그런데 토론을 기대하며 “그건 이런 거 아냐?”라고 말해버리면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고 입을 닫더라는 거다. 그게 리더의 숙명이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다.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손에 쥔 권력이 커질수록 외로움의 두께는 더해지고 모질어진다. 일개 기업의 부장도 그럴진대 국가 최고권력자야 두 말이 필요하랴. 대통령이 짜장면을 시키는데 어떤 각료가 탕수육을 외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 그런 의미에서 장관 해임 건의권 행사 운운한 새 총리의 취임 일성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어렵사리 됐다고 얕잡아보지 말라는 ‘군기잡기’일 수 있다. 여당 대표가 이름조차 못 욀 정도로 장관들의 존재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관이 일을 못하면 총리가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당연한 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관들이 존재감 없는 이유는 장관들이 더 잘 안다. 대통령이 물어봐야 대답을 하고 대답을 해야 존재감도 생길 텐데 그렇지 않으니 짜장면 아니면 짬뽕이지 그 말고 뭐겠느냔 말이다. 묻지 않으니 눈치 살피고 받아 적기만 하니 태극기 게양 의무화 같은 어쭙잖은 아이디어 말고 나오는 게 없는 것이다. (…) 대통령이라고 어찌 다 알겠나. 그러니 물어야 한다. 묻지 않으면 두려움은 더 커지고 책임도 따라 늘어만 간다. 비서에게 묻고 장관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그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내 생각은 잠시 접어둬야 한다.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 4대 개혁과제를 비롯해 산적한 현안을 일선에서 풀어갈 사람이 결국 장관들이다. 짜장면 대통령 앞에서 탕수육 정도는 시킬 수 있어야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겠나. 그 정도 힘은 갖고 정책을 챙기고 조직을 지휘해야 공직사회가 책임 있게 돌아갈 수 있고 그만큼 대통령의 무거운 짐은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짜장면 대통령과 탕수육 장관(2월 28일자 중앙일보 ‘이훈범의 생각지도’ㆍ논설위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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