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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서별관회의 때 산업은행은 거의 린치 당하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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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서별관회의 때 산업은행은 거의 린치 당하는 수준”

입력
2016.05.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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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4조2000억 지원

최경환 등 당시 정부인사 주도

국책銀 지원 액수까지 다 정해

STX조선 지원 결정도

회계법인 실사에만 의존

정부에서 ‘살리는 쪽’ 유도

한진해운-현대상선 영구채 보증

동부그룹 지원 등에도 압박받아

관료에 산은 곳간 지키기 어려워”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데 이어 STX조선해양까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이들 기업을 관리해온 산업은행의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입구.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데 이어 STX조선해양까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이들 기업을 관리해온 산업은행의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입구. 연합뉴스

“청와대 서별관회의(경제금융대책회의)에 들어가면 산업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건 없습니다. (정부의 뜻과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거의 린치(집단폭행)를 당하는 수준이죠. 관료들로부터 산은의 곳간을 지키는 건 정말 어려웠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은은 요즘 ‘공공의 적’이다.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의 대주주 혹은 주채권은행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을 해오며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워온 탓에 또다시 수조원대 국민 혈세가 투입돼야 할 형국이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여론은 물론 정부까지 가세해 국책은행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2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전직 산은 고위 인사는 “애초부터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에)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며 적어도 정부는 산은 책임론을 제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이 인사는 대우조선ㆍSTX조선 등의 지원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핵심 인물로, 책임론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정부가 다른 주체들과 함께 산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특히 작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게 된 것과 관련,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일 뿐 산은의 의사는 반영될 여지가 전혀 없었다”며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대야 하는지조차도 (서별관회의 이전에)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작년 10월22일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 사태를 논의했고, 바로 1주일 뒤 산은과 수은의 지원책이 발표됐다.

이 인사는 그러나 대우조선과 STX조선에 대한 지원 자체에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만약 지원을 하지 않았으면 그 파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산은을 포함한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산은의 자체적인 결정인가.

“대우조선 경영정상화 방안은 당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주도해서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중순(정확히는 22일)에 대우조선과 관련한 청와대 서별관회의가 열렸는데, 이미 그 전에 정부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경영정상화 방안이 만들어졌다. 거기엔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최대 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대야 하는지도 다 나와 있다. 원래는 최대 주주인 수은이 2조원을 대고 산은이 1조원씩 대는 걸로 돼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수은의 자본건전성이 급속히 안 좋아지니까 당시 최 부총리가 임 위원장에게 이런 부분을 반영해서 조정하라고 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산은이 2조6,000억원, 수은이 1조6,000억원씩 대는 걸로 정해진 거다.”

-정부가 왜 이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나.

“만약 당시 대우조선을 법정관리로 보냈다면 수출입은행은 당장 은행 구실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다. 수은으로선 대우조선에 대출해 준 12조원을 일시에 부실로 반영해야 하는데 이 경우 수은은 망한다. 당장 수은이 해외로 진출한 우리 기업을 위해 보증서 준 게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지원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

-STX조선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결정됐나.

“STX조선에 대한 지원 결정도 산은 단독으로 할 수 없었다. 당시 회계법인 실사보고서엔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높게 나왔다. 채권단이 반대하긴 했지만 정부에서도 실사 결과가 살리는 게 낫다는 쪽으로 나오니까 이런 식(자율협약)으로 가자고 일종의 합의를 본 거다. 그래서 채권단 100% 동의로 자율협약이 결정된 거다.”

-장기 업황을 감안한 구조조정의 큰 그림은 없었나. .

“당시엔 모든 게 불확실했다. 당시 최소한의 정보를 가지고 안진회계법인이 실사를 했고, 그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을 한 거다. 물론 당시에 STX조선이 수주 한 것도 있고 해서 살아날 거란 예상이 많았다. 3년 전에 STX조선이 수주 하나도 못할 줄 누가 알았겠나.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일을 한다면 지금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도 다 법정관리에 보내야 한다.“

-산은의 오판으로 결국 혈세 6조원을 날렸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법정관리 들어갔으면 STX조선에 투입한 수조원을 아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법정관리 들어갔으면 3만5,000명이 실업자가 됐다. 그땐 STX조선의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런데 지금은 STX조선이 완전히 청산된다 해도 실업자가 9,000여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6조원 안팎의 돈이 연착륙 하는 데 쓰인 거다. 공짜로 연착륙 할 순 없다. 당시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대우조선 역시 연착륙 비용으로 봐야 한다.”

-산은이 당국으로부터 압박을 많이 받나.

“산은의 가장 큰 고민은 관료들로부터 산은의 곳간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서별관회의에서는 산은이 참석자들로부터 ‘1대 n’으로 린치를 당한다. 3년 전 정부는 산은이 STX팬오션을 떠안으라고 압박했다. 실사를 했더니 STX팬오션을 떠안으면 2조원 손실이 나더라. 그런데 정부는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하니 무조건 떠안으라고 했다. 또 한번은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영구채 보증을 서라고 했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무조건 거절했다. 최고경영자의 경영 실패로 동부그룹이 흔들릴 땐 여러 루트로 해서 동부에 돈을 대라고 압박이 왔다. 산은 곳간 사정을 고려해 거절했지만 그 후 산은이 상당한 공격을 받았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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