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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작가 도전한 가정폭력 스릴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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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작가 도전한 가정폭력 스릴러물

입력
2015.05.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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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지음·김해용 옮김 · 예담 · 496쪽 · 1만3,500원
오쿠다 히데오 지음·김해용 옮김 · 예담 · 496쪽 · 1만3,500원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을 멈출 수 없었다”는 서평만큼 오쿠다 히데오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로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에는 범죄 스릴러물에 도전했다. 가독성 좋기로 유명한 대중작가와 스릴러 장르가 만났으니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질주, 또 질주다.

나오미는 삶에 대해 소극적인, 좋게 말하면 대단히 정중한 전형적인 일본 여성이다. 큐레이터를 꿈꿨지만 백화점 외판부 사원으로 들어가 고객들의 뒤치다꺼리를 한 세월이 어느새 7년, 건조했던 삶이 서서히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건 리아케미라는 중국인 여성을 만나면서다. 백화점 VIP 고객을 상대로 열린 행사에서 리아케미는 3,000만원이 넘는 파텍 필립 시계를 훔쳐가고, 나오미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를 상대로 시계를 돌려받은 뒤 다른 상품까지 판매하는 쾌거를 올린다.

다른 한편엔 나오미의 친구 가나코가 있다. 나오미보다 더 수동적인 성격의 가나코는 결혼 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으나, 남편이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얼굴에 피멍이 빠질 날이 없다. 노예처럼 사는 가나코를 본 나오미에게 어린 시절 엄마를 두들겨 패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고, 때마침 리아케미로 인해 난생 처음 ‘후안무치’의 쾌감을 맛본 그는 리아케미에게 사실을 털어 놓고 조언을 구한다.

“죽여버리세요.”

'공중그네'등 유머와 풍자 넘치는 소설을 써 온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엔 가정 폭력과 스릴러를 결합시킨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중그네'등 유머와 풍자 넘치는 소설을 써 온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엔 가정 폭력과 스릴러를 결합시킨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삶은 전쟁이며, 전쟁에서 양심과 죄책감은 사치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본격적으로 남편 살해 계획에 돌입하고, 여기서부터 독자는 몇 시간 동안 일상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자들이 일으키는 반란이라는 점에서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남편을 제거하려는 아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떠올리게 한다. 사건의 치밀함이나 반전의 강도, 캐릭터의 독특함, 심리 묘사 등 모든 면에서 ‘나를 찾아줘’ 보다는 몇 수 아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심리 묘사나 사회 성찰 따위에 시간을 뺏기는 게 아깝다는 듯 단순한 문장만으로 미친 듯이 사건을 전개, 잠시 동안이나마 독자를 앉지도 서지도 못할 긴장 상태에 빠뜨린다.

총알택시에서 내린 뒤의 감상은, 풍경은 기억나는 게 없지만 짜릿함 하나는 일품이었다는 것. 최근 여성 혐오 풍조에 신물이 난 한국 여자들에게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도 있겠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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