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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본래 따뜻한 말… 이론 앞세운 논쟁과 구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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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본래 따뜻한 말… 이론 앞세운 논쟁과 구분해야”

입력
2018.05.08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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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어법 모르면 비평 불가

이미자 듣던 사람도 서태지 듣고

젊은시인의 작품 읽는 노력 필요”

올해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조재룡 고려대 교수. 4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그는 "'시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으면 요즘 시들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올해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조재룡 고려대 교수. 4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그는 "'시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으면 요즘 시들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그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올해 팔봉비평문학상(팔봉비평상) 수상자로 뽑혔다는 얘기에 “와, 진짜예요?”라고 네 번 물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조재룡(51)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반응이 그의 글쓰기 스타일을 닮았다. 열정적이었다.

수상작인 ‘의미의 자리’(민음사)는 조 교수의 네 번째 비평집이다. 2010년 낸 첫 비평집을 비롯한 전작 세 권이 모두 팔봉비평상 본심에 올랐다 떨어졌다. ‘수상자의 자리’ 가까운 곳에서 8년간 애를 태운 그를 4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그렇게 기뻤나요.

“팔봉비평상과 인연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국문과 출신의, 소위 ‘정통 코스를 밟은 비평가’가 아니니까요. 등단도 하지 않았고요. 신춘문예에서 여러 번 떨어졌어요(웃음). 수상은 더없는 영광입니다. 비평을 고유한 문화적 힘으로 만든 비평가들이 받은 국내 최고의 비평상이니까요. 고 김현(1942~1990) 선생님이 1회 수상자고, 황현산 선생님은 2012년(23회) 공동 수상하셨죠. 저는 김 선생님 때문에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황 선생님께는 이론이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는 걸 배웠고요.”

-심사에서 ‘말과 열정이 넘치는 비평’이라는 평도 나왔는데요.

“제 비평이 어렵다는 말을 듣긴 합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건 어렵다고 믿는 것뿐이에요. ‘문학은 쉽고 단정해야 한다, 단문으로 써야 한다’고 정해 두는 게 말이 되나요?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일부러 쉽게 쓸 생각은 없어요. 문체를 버리면 비평이 성립하지 않고요. 복문으로 쓰면 그 만큼 생각이 복잡한 거고, 쉼표가 많으면 쉬어 가며 읽으라는 뜻이겠죠.”

-그런 열정적 비평을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해요. 시집 해설을 쓸 때도 예외 없이 두 번 이상 정독합니다(그가 요즘 읽고 있다는 시집 원고 여백엔 온통 메모와 그림이었다). 미쳤다는 얘기도 듣지만, 이런 게 성실한 비평이라고 자부합니다. 열정적으로 하되, 비평가로서 찍어 누르려고 하지 않아요.”

-‘의미의 자리’에서 다양한 세대 시인의 시를 다뤘어요.

“그 점을 심사위원들이 좋게 보신 게 아닐까요. 젊은 시인들의 편을 들어 주고 그들의 시를 읽어 주려고 애씁니다. 시인과 비평가의 나이 차이가 벌어지면 서로 어긋납니다. 나이 든 비평가 스스로의 몸이 못 따라가는 건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하죠. ‘요즘 시인들 이해를 못하겠어. 요즘 시는 너무 분열해. 아름다움과 서정을 포기했어’라면서요. 비평가가 시인의 어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비평을 하나요. 서태지를 들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혁오를 알겠어요. 비평을 하려면 이미자를 듣던 사람도 서태지를 들어야 해요. 춤도 춰 보고요. 시는 변신합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비평인데, 거꾸로 비평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예요.”

-원론으로 돌아가서, 비평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부정성의 정신에 근거하는 것이죠.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뜻에서요. 비평은 결국 따뜻한 겁니다. 아픈 말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시집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놓여 있는가, 주체는 누구인가를 묻는 관점 자체가 따뜻하다고 봐요. 이론을 앞세워 헤게모니를 잡으려 하는 시도인 논쟁과 비평은 구분해야 하고요.”

-비평의 위기라는 말이 수십 년 째 오르내리는데요. 그럼에도 비평이 할 수 있는 일은 뭔가요.

“비평 자체가 위기라기보다는 비평을 안 읽는 위기예요. 왜 안 읽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려워서 그런 게 아닐까요. 다들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고요. 비평의 사회적 역할에는 솔직히 관심 없어요. 문학은 가장 중요한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에요. 연구자로서 그런 문학을 연구하고 비평가로서 현장을 돌보는 것이 제가 할 일인 거죠. 소쉬르는 언어 연구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지점에 도달했어요. 문학 연구에도 그런 사람이 몇이라도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저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예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황수정 인턴기자

조재룡 교수는▦1967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8대학 박사 ▦평론집 ‘번역의 유령들’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한 줌의 시’, 이론서 ‘앙리 메쇼닉과 현대비평: 시학, 번역, 주체’ ‘번역하는 문장들’, 번역서 ‘시학을 위하여’(앙리 메쇼닉) ‘시학 입문’(제라르 데송) 등 ▦2015년 시와사상 문학상 수상 ▦현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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