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10.12 15:46
수정 : 2017.10.12 19:38

[황영식의 세상만사] 법치주의는 안녕한가

등록 : 2017.10.12 15:46
수정 : 2017.10.12 19:38

합치된 정의감 기대할 수 없는 정치

‘법의 지배’는 민주사회의 핵심 잣대

사법부와 절차법 얕잡아보지 말아야

학창 시절 정치학을 전공하며 어지간히도 법학을 얕잡았다. “정치학이 제왕의 학문이라면, 법학은 아전의 학문”이라던 한 은사의 술자리 가르침 때문만이 아니었다.

1970년대 말의 엄혹한 상황에서 정치와 법의 모습이 그만큼 달랐다. 폭압적 정치는 골목과 집안까지 파고들어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청춘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에 저항하는 모든 움직임 또한 정치였다. 야당ㆍ재야와 심정적으로 이어진 학내 ‘반(反)유신 민주화 투쟁’도 그 하나였다. 세상의 시작과 끝 모두를 정치가 좌우하는 듯했고, 유신독재만 극복하면 온갖 억압과 불평등이 풀릴 것 같았다. 자연히 정의의 감정은 오롯이 정치에 수렴했다. 반면 법은 늘 멀었고, 그래서 더욱 왜소해 보였다. 최고법이라는 헌법마저 정치권력에 짓밟힌 마당에 나머지 법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정의의 감정을 법에 기댈 수 없음은 당연했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법의 ‘ㅂ’자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헌법과 법철학은 전공선택 과목이었는데도 그랬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변화에서 정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97년 대선으로 순정(純正) 정권교체가 실현된 이후 정치는 공통목표를 잃고 본래의 권력 다툼, 땅 따먹기 싸움으로 되돌아갔다. 정권에 따라 정책은 꽤나 달랐지만, 어느 것도 국민의 합치된 정의의 감정을 온전히 흡입하지는 못했다. 아니, 계층과 젠더, 지역과 세대를 가른 단층이 뚜렷해지면서, 공동선(共同善) 자체가 신기루처럼 멀리서만 아른거렸다. 정의의 실현 수단으로서의 정치는 그렇게 죽어 갔다. 더욱이 갈등과 대립의 조정이라는 최소 역할에도 미흡했고, 심지어는 갈등과 대립의 발원지가 되곤 했다.

대신 그 자리에 법의 의미가 새롭게 살아났다. 법은 복잡한 이해 갈등을 풀어헤칠 마지막 최소 기준이었다. 50이 다 되어 뒤늦게 공부한 법은 아름다웠다. 논리적 정연함도 그랬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쓰인 실정법 조문의 공백을 메우는 관습과 조리는, 비록 자잘하긴 해도, 공정(公正)으로서의 정의와 닿아 있었다. 법치, 또는 법의 지배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믿음이 굳어졌다. 아울러 이 최소 규범조차 지키지 못하는 외침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실없이 느껴졌다.

최근의 두 사건은 이런 믿음에 적잖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첫째는, 헌법재판소장의 장기 궐위와 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다. 당분간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를 이어 가겠다는 청와대의 언급은 어쩌면 김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도 비정상이 지속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헌법과 법률이 헌재소장 임기나 권한대행의 시간적 한계를 못박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합헌을 주장하긴 어렵다. 1월 박한철 소장의 퇴임으로부터 따지면 20개월이 될 터인데, 이리 오래 비워도 되는 헌법기관 수장 자리가 있을 수 없다. ‘60일 이내’인 대통령 궐위 기간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대개 6개월 이상의 공백은 허용하지 않는 일반인의 시간 관념에 비추어도 너무 길다. 관련 ‘관습헌법’이 있다면, 이미 이를 해친 상태다. 더욱이 헌재의 박근혜 탄핵 심판을 거쳐 집권한 문 대통령이 헌재 경시 태도를 내비치기만 해도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나쁜 신호가 되리란 점에서 남다른 각오와 헌법수호적 결단이 요구된다.

둘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연장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드러낸 사법의 정치화와 절차법 경시 풍조다. 10일의 법원 심리를 앞두고 정치논란이 먼저 비등했다. 또 법리논쟁도 실체법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했다. 형사소송법 92조는 구속기간을 2월로 한정하면서 ‘특(별)히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심급마다 2월씩 두 번을 연장할 수 있게 했다. 현재의 6월이 그렇게 특별히 연장된 구속기간이어서, 롯데와 SK 관련 혐의 추가로 간단히 추가구속이 가능하리란 검찰 주장이나, 법원이 사후의 정치적 악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여론의 주문에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시대라면 몰라도.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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