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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2002)

입력
2016.08.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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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살아가지 말라”

스승의 따끔한 한마디

2002년 겨울, 인사동 허름한 술집에서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을 만났다. 책을 펴내고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선생님을 어찌어찌 연락해서 만난 자리였다. “너무 만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쓴 책이 한국에서 정식으로 출판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첫마디 인사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과 온화한 눈길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은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 너무 미안하다고,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늘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을 자주 찾게 되고 당신의 책이 그전까지 한국에서 계약 없이 무단으로 출간되어 팔리고 있었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했다. 선생님이 얼마나 한국 친구를 그리워했는지, 당신의 책을 펴낸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는지, 그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막걸리를 마시며 적당하게 취기가 올랐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조 사장님은 어떻게 이 책을 양철북 출판사의 첫 책으로 펴낼 마음을 먹었어요?”“선생님, 저는 80년대에 대학에 들어와서 ‘전환 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배워온 것이 절반의 교육이었다는 각성과 분노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먹고 사는 문제로 밀려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책을 찾다가 선생님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더러 ‘그렇게 살지 말라고’‘세상에 밀리고 밀려서 대충 살아가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을 건네 왔습니다. 저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절반의 교육에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펴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말씀 드린 이 두 권이 제 인생을 구제해 준 책이었습니다.”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회가 있던 날, 450석 규모의 강연장은 복도까지 꽉 찼다. 일본 언론의 인터뷰는 전혀 응하지 않던 선생님은 ‘한국의 친구를 위해서’라며 한국 언론의 모든 인터뷰를 허락했다. 그 해 가을, 선생님은 식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몸에 암 덩이를 지닌 줄도 모르고 나는 그렇게 선생님을 혹사시켰다.

암 수술 뒤에 일본 아타미에 있는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온몸이 야위어 뼈만 남은 선생님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웃으며 껴안았다. 그날 저녁, 선생님은 한국에서 친구가 왔으니,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자며 음식점으로 나를 안내했다. 선생님은 백혈구 수치가 매우 좋아졌다며, 맥주를 한 잔 드셨다. 내가 당신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할까 봐 마신 것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좋아하는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마시고 싶어할까 봐.

2006년 한국의 독자들과 일본으로 문학기행을 갔을 때, 선생님은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려와서 우리와 함께 자고 이튿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이 선생님의 마지막 외출이 되었다. 선생님은 삶을 마치기 전에 의식이 돌아오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 조 상(さん)네 지리산 마을이 참 따뜻했어.”

조재은 양철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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