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당신은, 신념에 도취된 꼭두각시인가요

알림

당신은, 신념에 도취된 꼭두각시인가요

입력
2016.02.12 14:41
0 0

휘둘리지 않는 힘

김무곤 지음

더숲ㆍ280쪽ㆍ1만4,000원

햄릿은 우유부단한 혹은 고뇌하는 인물의 대명사다. 좌충우돌 행동파는 돈키호테형으로, 번민가는 햄릿형으로 명명되기 일쑤다. 오죽하면 1948년 아카데미 작품상 영화 ‘햄릿’의 감독, 제작, 주연 로렌스 올리비에가 이 작품을 “우유부단한 남자의 비극”으로 정의했을 정도. 그런데 햄릿에 내려진 이 평가는 온당한 것일까? ‘휘둘리지 않는 힘’(더숲)은 이 같은 통념들을 거부하며, 현대 사회과학의 눈으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다시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저자 김무곤 동국대 교수는 ‘종이책 읽기를 권함’ ‘NQ로 살아라’ 등의 교양서를 써온 사회심리학자 겸 언론학자다. 그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9명의 행동 양식과 가치관을 분석하며 나, 타인, 관계, 세상을 대하는 묘안을 모색한다. 책에서 고전 중의 고전 텍스트들을 정치학(햄릿), 경영학(맥베스), 사회심리학(오셀로), 커뮤니케이션학(리어왕) 등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과정은 그 자체가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내 가치관을 구성해가는 일종의 훈련이다.

이를테면, 햄릿을 들여다보는 대목에서는 괴테, 브래들리, 프로이트 등이 햄릿에 내린 정의를 거쳐 이 인물이 지닌 복합적, 입체적 면모를 다룬다. 주저하지 않는 살인자, 과감한 복수가, 고독한 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이 텍스트 곳곳에서 드러난다. 같은 방식으로 맥베스에게서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오셀로의 태도에서는 남에게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는 투사(projection)를 꼬집어낸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모색하려는 것은 각 인간형이 지닌 ‘생각의 중심’이다. 즉 그 사람이 중시하는 가치관, 삶의 방식, 우선순위, 희로애락,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 등이다. 분석대상의 이 생각의 중심을 간파하는 훈련이야 말로 나와,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휘둘리지 않는 힘’을 부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 김무곤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을 가장 명쾌하면서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자 김무곤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야 말로 “인간의 본성을 가장 명쾌하면서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 나름의 독서법으로 4대 비극을 탐독한 독자에게는 이런 분석법이나 결과가 맥 빠질 만큼 새삼스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가 여타 문헌, 예시 등을 적재적소에 동원하는데다, 이를 통해 다루는 다양한 인간 유형의 심리, 욕망 등이 분석이 소소한 각성을 제공하는 것은 장점이다.

저자는 혹독한 현실 앞을 직면한 청년들에게 “정신력의 힘으로 버티라는 그런 낭만적 조언은 할 수 없었다”며 “차라리 살아남기 위한 법을 체득하라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기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썼다. 이를 위해 “인간의 본성을 가장 명쾌하면서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활용한 셈이다. 책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휘둘리지 않는 힘이 원천은 “단순명쾌함의 유혹을 물리치고, 넓고 깊고 다원적으로 사람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다. 주체적 시각을 회복하라는 저자의 이런 촉구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쉬운 편견, 간편한 단정 등을 돌아보게 한다.

“생각의 수고를 회피하려면 사물과 대상을 단순하게 줄여서 생각하면 된다. 왼쪽-오른쪽, 나쁜사람-좋은사람, 천사-악당. (…)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보는 일을 허투루 한다면, 내 존재가 타인의 의도대로 휘둘리게 된다. (…) 지성인이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허상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깨어 있기 때문에 종종 오해받고, 아직 잠에 취해있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남의 말, 남의 신념에 도취된 꼭두각시가 되지는 않는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