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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작품은 스스로 이야기…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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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작품은 스스로 이야기…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요”

입력
2016.06.1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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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작가가 14일 스위스 ‘바젤국제아트페어’ 전시장의 ‘언리미티드’ 섹션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 후 셋으로 나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 앞에 서 있다.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양혜규 작가가 14일 스위스 ‘바젤국제아트페어’ 전시장의 ‘언리미티드’ 섹션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 후 셋으로 나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 앞에 서 있다.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저는 관객에게 이미 (제 작품을)맞닥뜨리는 경험을 제공했고, 그것으로 작가로서 할 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관련한 서사를 풀어내거나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말하는 건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한국 작가’ 혹은 ‘여성 작가’라는 진부한 타이틀에서 진작 탈피해 이름 석자로 세계 무대에 자리매김한 양혜규(45) 작가는 1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하는 식의 질문은 내키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작품 자체 혹은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이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만드는 직업이 작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작가는 2009년, 2014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바젤국제아트페어’(아트바젤)의 ‘언리미티트(Unlimited)’ 섹션에 참여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스테이트먼트(Statements)’ 섹션에 참여한 것까지 따지면 벌써 네 번째 아트바젤에 왔으니 보통 인연은 아닌 셈이다. 일반인 관람객 개방에 앞서 VIP들만 입장 가능한 프리뷰 전시 ‘퍼스트 초이스(First Choice)’가 진행 중인 이날 스위스 바젤 메세플라츠는 비가 내리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행사를 찾은 관람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제47회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섹션에 참여한 양혜규 작가의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 후 셋으로 나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제47회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섹션에 참여한 양혜규 작가의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 후 셋으로 나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美 조각가 솔 르윗 작품 재해석

해외 언론 ‘주목할 작품’ 호평

“작품의 해석은 관람객 몫

작가 입에서 나오는 것 아냐

내 작업은 끊임없는 비커밍”

올해 아트바젤에 출품한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 후 셋으로 나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은 미국 출신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1928~2007)의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1986)의 형태와 구성을 참조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뒤집고 확장시키는 형태로 원작에서 벗어난다.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뒤엉키거나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연약한 소재의 블라인드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데 모여 견고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투명성과 반투명성을 함께 지니는 블라인드를 통해 개방과 폐쇄, 안과 밖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양혜규의 작품은 퍼포먼스나 대형 설치작 등 소위 ‘기가 센’ 작품들로 채워진 언리미티드 섹션에서도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롭리포트, 아트시 등 해외 유력 언론도 양혜규의 작품을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았다.

솔 르윗의 'The Irregular Tower'(1999)도 양혜규 작가가 '솔 르윗 뒤집기'로 참여한 언리미티드 섹션에 함께 전시돼 있다.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솔 르윗의 'The Irregular Tower'(1999)도 양혜규 작가가 '솔 르윗 뒤집기'로 참여한 언리미티드 섹션에 함께 전시돼 있다.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지난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에서 높이 설치됐던 이 작품은 이번 아트바젤에서 관객의 눈높이까지 내려왔다. 때로는 관람객의 동선을 막으며 서 있는 것처럼 바닥까지 내려온 작품은 관람객이 더 풍부하게 공간감과 부피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작품을 아래로 설치한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물음에 작가는 “그저 해보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이라 말했다. “작품의 맥락과 의미가 반드시 작가의 입을 통해 나와야 하는 건 아니”라는 양혜규 작가의 답은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구역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것이 작가”라는 그의 생각과 상통했다. “물론 누군가는 (작업에 대해)성급하게 판단을 내릴 것이고, 그것을 제가 따질 수는 없어요. 다만 좋은 관람객이라면‘예측 불허’ 정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최근 자신의 활동을 돌이켜 “굶주린 사자처럼 숨막히게 달려왔다”고 표현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트바젤이 끝난 직후인 22일부터는 포르투갈에 위치한 세할베스 현대미술관에서 ‘불투명 바람이 부는 육각 공원’ 개인전을 약 6개월 간 연다. 7월 6일부터 두 달 동안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신작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수’(2016)를 선보이는 전시회도 갖는다. 특히 퐁피두 개인전에서는 기존 순백색의 블라인드 설치작과 달리 초록빛 혹은 연보라빛을 띤 200여 개의 블라인드로 구성된 작품을 세 개 층을 아우르는 높은 공간이 있는 중앙 홀에 설치할 계획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근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에서는 지난 4월부터 개인전 ‘의사擬似-이교적 연쇄’ 를 1년 일정으로 열고 있다.

굵직한 미술관 전시가 잇따르고 있지만 양혜규 작가는 오히려 “전시를 많이 하는 것에는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예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그는 전시 횟수나 아트페어 등을 통해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보다 “전시 과정에서 생성되는 문맥과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9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여는 대규모 개인전까지 아직 3년이나 남았음에도 그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제는 무조건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요. 그보다 긴 시간을 두고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비커밍(Becom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처음이기도 하고 과정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하죠. 전 그저 끊임없이 ‘비커밍’ 하는 것 같아요.”

바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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