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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조혼·명예살인…악습에 비명 지르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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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조혼·명예살인…악습에 비명 지르는 여성들

입력
2014.12.0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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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이전 결혼 여성 7억명… 교육·취업 등 삶의 기회 못 누리고 성인 되기 前 다산하는 확률도 높아

할례받은 여성 1억2500만명… 과다출혈로 죽고 불임·감염 고통

명예살인 매년 5000명… 허락 없이 결혼·순결 훼손 등 이유

#지난 4월 나이지리아에서는 35세 남성과 조혼한 소녀 와실라 타시우(14)가 결혼하고 2주 만에 음식에 쥐약을 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체포돼 청소년보호소에 구금된 타시우에 검찰은 사형을 구형할 계획이다.

#지난해 6월 부모의 강요로 할례 수술을 받던 이집트 소녀 소해르 알바타(12)는 수술 도중 목숨을 잃었다. 알바타의 변호인은 그에게 할례 수술을 해주던 의사의 살인이라고 고발했지만, 지난달 21일 의사는 알바타의 가족에 5,001이집트파운드(77만여원)를 배상하는 조건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5월 임신 3개월이던 파키스탄의 파르자나 파르빈(25)은 부모 허락 없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대낮에 법원 앞에서 아버지와 친오빠 등 가족 20여명이 휘두른 방망이와 벽돌 등에 맞아 숨졌다. 파르빈은 부모가 남편 이크발을 납치 혐의로 고소하자 반대 증언을 하려고 법원에 가던 중이었다.

아프리카나 이슬람국가 등에서 자주 발생하는 조혼, 할례, 명예살인 등의 악습으로 지금도 해마다 수만 명의 여성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 이 같은 여성 박해는 종교ㆍ문화적으로 고착돼 있는데다 가족 등 측근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아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심지어 선진국에서조차 이러한 악습의 굴레에 갇힌 여성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체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예멘의 타하니(맨 왼쪽)는 6살 되던 해 당시 25살이었던 마제드와 결혼했다. 그녀의 전 학급친구 가다(맨 오른쪽) 역시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과 살고 있다. AP연합뉴스
예멘의 타하니(맨 왼쪽)는 6살 되던 해 당시 25살이었던 마제드와 결혼했다. 그녀의 전 학급친구 가다(맨 오른쪽) 역시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과 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혼 내몰리는 여성 전세계 7억 넘어

지난 7월 유엔아동기금(UNICE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여성 중 7억여명이 18세가 되기 전 결혼한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0~49세 여성 가운데 77%가 조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인권 활동가 주베이다 나지는 타시우의 재판이 결정되자 “타시우는 부모의 강요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며 “ 수백만 나이지리아 소녀들에 가해지는 구조적 학대의 희생자”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외신들도 타시우 사건이 조혼에 내몰리는 수많은 어린 신부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본다.

유엔 보고서는 조혼으로 어린 신부들이 아동기에 누려야 할 가치가 훼손당할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고립된다고 지적했다. 어려서부터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떨어져 교육, 취업 등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라위에서는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의 3분의 2가 조혼했다는 조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여성 중에는 이 비율이 5% 남짓이었다.

아울러 어린 신부들은 성적 지식이 부족하고 신체도 성숙하지 못해 성병 감염이 쉽고 임신 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결혼 직후부터 첫 아이를 낳고 성인이 채 되기 전에 다산하는 확률이 높아 부모인 자신과 아이들 모두 문제 상황에 직면하기 쉽다. 네팔의 경우 15세 전에 결혼한 20~24세 여성 중 3분의 1이 3명 이상의 아이를 낳는다. 성인이 돼 결혼한 이들 중에선 3명 이상의 아이를 낳은 비율이 1%에 불과했다.

어린 신부들이 임신 중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방글라데시와 에티오피아, 네팔, 나이지리아 등에서 15세 이전에 조혼한 여성이 병원 등 의료기관에 가는 횟수는 성인이 돼 결혼한 여성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유엔서 금지한 할례, 영국에서도 횡행

할례는 성기의 일부를 절제하거나 절개하는 의례다.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강요 받는 경우가 많다. 주로 종교적인 이유를 들지만 이면에는 성욕을 감퇴시켜 여자를 더 정숙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 할례 의식을 치르다 과다출혈로 숨지기는 여성도 있고 불임과 감염 등으로 고통 받는 인구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사망률이 4배 이상 높다는 분석도 있다.

유엔은 2012년 총회에서 여성 할례를 전면 금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 같은 의지 표명만으로 관습을 깨트리긴 쉽지 않아 보인다. UNICEF가 지난 2월 7일 ‘여성 할례 철폐의 날’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할례를 받는 여성은 1억2,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여성 할례가 가장 많은 나라는 소말리아로 전체 여성의 98%를 차지했다. 이어 기니(96%) 지부티(93%) 이집트(91%) 등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는 이슬람 국가에서 일부 무슬림이 할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들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관련 규율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코란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단지 문화적 관습으로 강요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 받는다.

놀랍게도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여성이 할례 의식을 강요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 하원은 최근 20년간 영국에서 17만명의 여성이 할례를 받았고 현재도 13세 미만 소녀 6만5,000명이 이 같은 위험에 노출됐다는 보고서를 지난 7월 발표했다. 주로 할례 관습이 있는 아프리카 등에서 영국으로 온 이주민이 10대 소녀들에 할례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30년 전에 할례 행위를 인권 침해라며 법으로 금지했지만 할례 관습을 지키는 이주민들은 불법 시술을 받거나 어린 딸을 국외로 보내 수술을 받게 하는 방법으로 단속망을 피한다. 영국에서 할례를 강요하거나 시술행위가 적발되면 최고 14년의 징역형을 받지만 국내에서 이와 관련해 기소된 사건은 올해 단 한 건뿐이었다. 영국 하원은 “여성 할례는 극단적 학대”라면서 “정부와 경찰, 보건·교육 당국이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해마다 5천명 명예살인에도 법이 가해자 보호

여성 인권 침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명예살인이다. 집안의 명예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척이 친족을 직접 죽이는 관습이다. 이 역시 주로 이슬람권 국가에서 종교적 규율을 어기거나 순결을 잃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난 5월 파르빈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이‘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여성을 그런 방식으로 살해하는 것은 털끝만큼도 명예롭지 않다”고 비판했다.

유엔활동기금(UNPFA)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명예살인으로 숨지는 여성은 매년 5,000명에 달한다. 명예살인이 빈번한 곳은 요르단,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터키 등 대부분 이슬람권이다. 이 지역에서도 명예살인은 대부분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등에서는 여전히 가해자들의 범행 이유를 인정해주는 ‘면제법’ 때문에 처벌 면제나 경감이 가능하다. 파르빈을 살해한 아버지와 친오빠 등 가해자 4명은 지난달 징역 10년 등을 선고 받았지만 면제법 때문에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받게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명예살인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피해자인 여성 스스로가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마누엘 아이스너 교수 등의 조사에 따르면 요르단에서는 10대 소년 중 46%가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이 정당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여자 아이들 중에서도 22%가 이에 동의했다.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여성들 스스로도 가족의 명예를 지키려면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고 생각해 명예살인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만연한 성차별 인식 바꾸는 게 우선

이 같은 여성 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우선 ‘남녀 차별’이라는 폭력의 근본 원인을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엔여성기구 품질레 음람보 응쿠카 사무국장은 지난달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25일)을 앞두고 낸 성명에서 “각국 정상들에게는 전세계 여성 및 소녀들의 50%가 겪고 있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다”고 촉구했다. 응쿠카 사무국장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여성 폭력의 근본 원인인 성차별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며 “인권과 상호 존중에 대한 교육을 하고 젊은이들에게 평등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의학 전문가들도 지난달 21일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 기고를 통해 여성 폭력의 원인이 되는 여성은 열등하다는 믿음과 남녀간 불평등한 각종 규범ㆍ제도 등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각국 정부는 말만 내세우지 말고 여성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충분한 재원을 제공해야 한다”며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필수적인 의료, 사법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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