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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인공 행복'

입력
2014.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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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내는 여전히 나쁜 X이죠.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어요. 어쨌든 기분이 좋아졌거든요.” 30대 중반의 변호사 존 그린은 돈 문제 때문에 아내와 불화가 심해 비참한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덕분에 마음만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의 마취과 전문의 로널드 드워킨은 상반기 국내에 번역된 저서 행복의 역습에서 그린처럼 약물에 의존해 얻은 행복을 ‘인공 행복(Artificial Happiness)’으로 지칭한다. 지금 미국에선 우울증 환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행감이나 우울증상에 대해서까지 항우울제 처방이 남발되고 있어 문제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 ‘기적의 알약’으로 불리는 ‘프로작(화학명 플루옥세틴염산염)’이 미국에서 개발된 건 1974년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여러 신경전달물질 가운데‘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의 양을 늘려주는 약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제일 외로운 병으로 꼽히는 우울증은 지구촌 인구의 약 20% 가량이 평생 한번 이상 경험하며, 여성이 남성보다 2배 가량 많지만 50살을 넘으면 비슷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자살 원인의 60~80%가 우울증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데도 그 동안 변변한 약이 없었다. 하지만 88년 본격 시판된 프로작은 부작용이 적고 복용이 간편해 항우울제의 대명사가 됐다.

▦ 한국의 자살률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당 28.5명으로 OECD 평균(12.1명)보다 월등히 높다. 이에 대해 국내 종합병원 관계자는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우울증에 대한 약물처방 비율은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1년 새 우울증상을 경험한 성인은 12.9%였고, 이중 정신과 상담을 받은 사람은 10명 중 한 명(9.7%)꼴로 매우 낮았다.

▦ 한국인이 우울증 치료에 소극적인 주된 이유는 정신과 치료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한마디로 치료가 필요한데도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체면을 의식해 회피하는 행태다. 인공 행복 처방이 너무 흔해 문제인 미국과 달리 인공 행복이 필요한 환자조차도 자신의 우울증상을 표현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깨야 ‘OECD 최고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진용논설위원 hub@hk.co.k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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