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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신해철에 열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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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신해철에 열광했을까

입력
2014.10.2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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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체벌 금지 핫이슈에 거침없는 소신 피력 깊은 각인도

조용필 "음악적 모험 정신 대단" 추모물결… 싸이·신대철 등 빈소에

28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해철의 빈소. 뉴시스
28일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해철의 빈소. 뉴시스
록스타, 음악가, 논객, 라디오DJ였던 신해철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카리스마적 존재이자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논쟁의 중심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은 투사였다. KCA엔터테인먼트 제공
록스타, 음악가, 논객, 라디오DJ였던 신해철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카리스마적 존재이자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논쟁의 중심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은 투사였다. KCA엔터테인먼트 제공

27일 숨진 가수 신해철을 향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에 대한 추모는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가이자 자유주의 논객으로서 그가 한국 사회에서 지녔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신해철은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캠퍼스밴드 ‘무한궤도’의 메인 보컬로 ‘그대에게’를 부르며 데뷔했다. 그는 록그룹 넥스트 결성 이전 솔로 활동 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라는 발라드곡으로 ‘오빠’ 이미지를 형성한 아이돌 스타였으며 넥스트로 활동할 때도 ‘날아라 병아리’ 같은 부드러운 곡을 타이틀로 내세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신해철은 중학교 때부터 헤비메탈에 심취했던 ‘록 키드’였다. 넥스트는 저항적인 노랫말과 실험적인 곡으로 정체성을 형성했다. 자신을 길들이려는 세상에 맞서라는 메시지를 담은 2집 ‘껍질의 파괴’와 자기 마음 속에서 영웅을 찾으라는 4집 ‘더 히어로’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메탈곡들이 넥스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신해철은 실험적 음악을 추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솔로 2집의 작곡에 컴퓨터 음악을 도입해 1990년대 트렌드를 주도했다. 윤상과의 프로젝트 그룹 ‘노땐스’와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통해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시도했다. 올해 6월 발매한 솔로 6집에서는 오로지 목소리로만 만들어진 원맨 아카펠라 곡 ‘아따’를 선보였다.

그는 대중문화 스타의 사회적 발언을 위험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005년부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합법화, 간통죄 폐지, 학생 체벌 금지 등 당시 대중이 수용하기 힘든 주장을 펼쳤다. 이로 인해 비난을 받으면서도 인권과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2008년 ‘가장 토론을 잘하는 비정치인 1위’로 뽑혀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 출연하기도 했다.

신해철이 2001년부터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은 채널을 바꿔가며 2012년까지 계속됐다. 방송 도중 자리를 이탈하고 음악만 트는가 하면 방송 내내 한 곡도 틀지 않고 음악계 이슈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하는, 라디오의 상식을 파괴한 방송이었다. 하지만 냉소적이면서도 진지하게 청취자의 고민을 상담하는 ‘나쁜 DJ’는 청취자들을 매료시켰다. 애청자들이 비주류 감수성을 대표하며 세상과 싸워 온 신해철의 ‘마왕’ 캐릭터를 인정했던 것이다.

외부 활동이 뜸한 가수 조용필은 28일 이례적으로 빈소를 찾아 “고인은 음악적 모험 정신과 욕심이 대단했다”며 “음악 관련 대화를 하면서 내가 묻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신해철과 6촌지간인 서태지는 추도문에서 “순수한 영혼과 진실된 의지로 우리를 일깨워준 음악인이자 어깨를 다독여준 맘 좋은 형”이라고 추억했다. 배우 문성근은 “대통령 선거 TV 지원연설에서 대본 없이 20분간 할 말을 한 사람은 백기완과 신해철 뿐”이라고 했으며 조국 서울대 교수는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 당시 노래하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밖에 싸이, 한대수, 신대철, 사진작가 김중만 등이 서울아산병원의 빈소를 찾아와 애도했다.

신해철은 1996년 발표한 ‘절망에 관하여’에서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라고 노래했다. 그는 노랫말 그대로 죽는 날까지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분투했고 그 결과 동시대 가장 선도적인 예술가들 중 한 사람으로 남게 됐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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