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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외교셈법… 원칙론 매몰 땐 활로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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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외교셈법… 원칙론 매몰 땐 활로 한계"

입력
2015.08.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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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광복 70주년 경축사

과거 얽매이기보다 미래에 방점

한층 유연해진 대일 메시지 제시

美·中 현안 따라 전략 다변화

9·10월 예정된 정상회담 통해

균형외교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

8ㆍ15 광복 및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점으로 하는 한일 외교전이 일단락됐다. 명확한 한일 과거사 반성 의사가 없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14일 담화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대일 비난 수위는 조절됐고 과거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전문가들은 9월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10월 한미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외교 전략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朴, 아베 담화 비판하면서도 미래 여지 둬

박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의 역사 인식이 한일관계를 지탱해온 근간이었다는 점에서 (아베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 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아베 담화에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며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연설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외교부도 15일 오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아베 담화는 지금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와 침략의 과거를 어떠한 역사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고 비판하면서도 “과연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 역사인식 계승 등) 이러한 입장을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 지켜보고자 한다”고 여지도 뒀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물료 봉납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비판 수위를 낮췄다.

● 아베 담화 실망, 그래도 갈 길 간다는 韓

이 같은 정부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의 극우성향과 일본 내 정치 기반 등을 고려할 때 담화에서 강도 높은 과거사 반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타협을 지향한 일본 외무성 관료들과 달리 아베 정권 극우성향 참모들의 반발 움직임에서도 담화로 얻어낼 게 거의 없다는 분위기가 이미 감지된 상태였다.

결국 박 대통령은 아베 담화 발표 전부터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10일 수석비서관 회의)는 절충안으로 물러섰다. 외교당국 역시 ‘식민지배, 침략, 사죄, 반성’ 등 4가지 핵심 키워드가 담기는 데 집중하기보다 “(이런 키워드들이 담긴) 역대 내각 담화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게 담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일본 측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베 담화에선 표현이 애매하고 주체가 불분명하긴 했지만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이 언급됐다. 또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변함 없다”는 문구가 들어가면서 한국 정부가 대놓고 아베 담화를 비난할 여지가 줄었다. 14일 저녁 아베 담화가 나온 뒤 평가를 유보했던 정부가 하루만에 내놓은 입장의 골자도 결국 ‘아베 담화에 실망하지 않고 나름 갈 길을 가겠다’는 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16일 “박 대통령의 경축사는 아베 담화의 불충분한 부분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한일관계 개선의 의지를 나타냈다”며 “한국이 아베 담화의 늪에 빠지지 않는 외교정책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美中 유동적 실리외교는 韓 외교 부담

문제는 앞으로 한국 외교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커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9,10월 한중ㆍ한미 연쇄 정상 접촉을 통해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고,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에 이은 한일 정상회담 수순을 고려 중이다. 집권 4년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추진에 힘을 싣기 위한 복안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실리외교에 따른 유동적인 태도, 한국의 선제적 균형외교 노력 부족 때문에 뚜렷한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아베 담화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지 못한 이유도 미국ㆍ중국 등의 변심에 따른 우리의 외교적 지렛대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미국은 아베 담화가 나오자 마자 백악관 대변인 성명에서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끼친 고통에 대한 반성과 과거 정부의 담화 유지 약속을 환영한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의 입지를 좁혀놨다. 중국의 부상을 경계해야 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큰 미국 입장에선 한일관계 개선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센카쿠 열도 영유권 갈등으로 불편한 관계였던 중국과 일본은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에 이어 오는 9월 아베 총리의 방중을 검토하는 등 언제든 관계 개선에 나설 태세다.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외면했다간 동북아 외교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아베 담화에 대한 반발 수위를 낮추고 한일관계 개선에 무게를 뒀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박근혜정부 2년 반 동안 원칙론만 얘기하다 이 지경이 됐고, 구체적 액션플랜을 제시해 어떻게 관철시키겠다고 하는 게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한국 외교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아시아 평화번영이고 한일관계는 이를 위한 종속변수나 수단”이라며 “우리의 외교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과는 교류와 과거사 해결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외교를 강화해야 하고, 동아시아에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상원기자 ornot@hankookilbo.com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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