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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중성자와 인권상

입력
2017.10.17 14:2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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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진다. 원자는 한 가지가 아니다. 각 원자의 종류를 원소라고 한다. 원자는 원래 ‘쪼개지지 않는다’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20세기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핵과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원자핵의 정체성은 오로지 양성자에 의해 결정된다. 원소의 정체는 핵 안에 몇 개의 양성자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양성자가 하나면 수소, 두 개면 헬륨, 여섯 개면 탄소, 여덟 개면 산소라는 식이다. 원소의 정체성에 중성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성자는 말 그대로 전하가 없는 입자다. 양성자처럼 양(+)전하를 띠거나 전자처럼 음(-)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적 존재다. 우리는 중성적 존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안정적이고 평온해서 힘이 없고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중성자는 핵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핵이 분열할 때 만들어진 중성자가 핵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성자가 있기에 핵 발전과 핵무기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중성자는 내게 지루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9시 뉴스에서 중성자탄에 대한 보도를 보고 나서야 중성자는 드디어 두려운 대상이 되었다. 중성자탄은 건물은 파괴하지 않고 건물 속에 들어 있는 생명만 살상하는 폭탄이다. 핵폭탄이나 수소폭탄을 사용하면 그 지역이 모두 파괴되고 방사능에 오염되기 때문에 폭탄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그 지역과 장비를 활용할 수 없다. 하지만 중성자탄을 사용하면 점령지의 장비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고 방사능 걱정도 없으며 심지어 식량물자도 그대로 쓸 수 있다. 이보다 효율적이고 무서운 무기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중성자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중성자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긴 셈이다. 그 이후로 어찌된 일인지 중성자탄에 대한 보도가 별로 없었다. 중성자탄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잊혔고 중성자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지루한 이미지가 다시 생겨났다.

그런데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수소와 헬륨은 빅뱅의 순간에 생겨났다. 나머지 원소들은 대개 별 안에서 핵융합으로 생겨난다. 생성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커다란 원소들은 초신성이 폭발할 때 생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어요’라는 낭만적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소의 생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수소에서 철까지 뿐이었다. 철보다 더 커다란 원소들은 어떻게 생기는지 모른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어떻게 생겨날까? 천체물리학자들은 철에 중성자가 결합해서 생길 것이라고 짐작했다. 중성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다른 원자핵과 결합할 때 반발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성자는 핵 안에서는 안정적이지만 핵 바깥에서는 10분 안에 붕괴하고 만다는 것. 자유로운 중성자가 붕괴하기 전에 철과 만날 방법이 있어야 한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두 개의 중성자별이 충돌해서 합쳐지면 가능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중성자별이라니? 중성자별은 초신성이 폭발한 다음에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별인데, 이름처럼 대부분 중성자로 구성된 희한한 별이다. 지름이 고작 16~32㎞ 정도로 아주 작다. 하지만 질량은 태양의 1.5~2배나 된다. 밀도가 엄청나게 높다. 중성자별의 부피 1㎖가 차지하는 질량이 1억 톤이나 될 정도다. 밀도가 높다 보니 결국에는 블랙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중성자별에서 무거운 원소가 생길 것이라는 추측은 수학적인 결과일 뿐이다.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중력파다.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할 때 발생한 중력파가 검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중성자별이 충돌해도 중력파가 발생하지 않을까? 이 중력파를 발견한다면 두 개의 중성자별이 충돌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천체물리학자들은 중성자별이 충돌해서 생기는 중력파를 탐색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8월 17일 밤 9시 41분 라이고(LIGO)와 비르고(VIRGO) 과학협력단은 두 개의 중성자별이 충돌할 때 발생한 중력파를 관측했다. 연구팀은 이어서 중력파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밝혀냈다. 1억 3천만 년 전 공룡의 전성기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때 중성자들이 기존의 무거운 원소와 융합하면서 금과 백금처럼 더 무거운 원소들이 생겨난 것도 확인했다. 이 발견으로 원자핵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남아있던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천체물리학의 세계가 열렸다. 천체물리학의 대사건에 한국중력파연구단,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과 한국천문연구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연구자들을 격려해야 한다.

우주사에서 정작 중요한 일은 중성자가 일으켰다.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역사를 만든다. 그 공로로 우리 촛불시민들이 에버트 인권상을 받게 되었다. 자랑할 일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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