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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아니냐" 쫓아내더니 무단 이탈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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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아니냐" 쫓아내더니 무단 이탈로 몰았다

입력
2015.07.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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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농장 캄보디아 노동자 고용주

경기도 갔다 왔다고 "나오지 말라"

체불임금 등 요구하자 "신고 할 것"

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지난달 말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던 50대 여성이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입구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지난달 말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던 50대 여성이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입구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지금 아프지 않아요. 일하고 싶어요. 갈 곳도 없어요.”(이주노동자 Y씨)

“안 돼. 네가 오면 병균이 돌아다닌다고 아무도 일하러 안 온다. 친구 집에 가든, 서울로 가든 나는 모른다.”(Y씨의 고용주)

지난달 17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Y(28ㆍ여)씨와 고용주 간의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났고, Y씨는 일터에서 쫓겨났다.

지난해 7월 입국해 경남 밀양의 고추농장에 일해 온 Y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왜 농장에서, 마을에서 떠밀려 나가야 했을까.

지난달 8일 오전 비닐하우스에서 고추 수확을 하던 Y씨는 기침을 했다. 콧물도 났다. 사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의심되니 당장 병원에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이날은 정부가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전국의 병원 24곳 명단(11곳이 경기 지역)을 공개한 다음날로, 메르스 감염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극에 달했던 시기다. 이틀 전인 6일 사장은 “고추 가격이 떨어져 손익이 맞지 않으니, 2일간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Y씨는 1박2일 일정으로 경기 용인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고 왔다.

메르스 환자가 많이 발생한 경기 지역에 다녀왔으니 메르스가 의심된다는 사장의 말에 Y씨는 8~10일 개인병원과 밀양시보건소를 찾았다. 개인병원에선 “가벼운 감기 증상”이라고 했고, 혈액 검사까지 실시한 보건소에서도 “메르스와 관계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사장은 믿지 않았다. 그는 보건소에서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고 농장 기숙사로 복귀하던 Y씨에게 전화로 “3,4일 후 연락할 테니 더 이상 농장에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Y씨는 지난달 10일 5월치 임금 100만원과 옷가지만 급히 챙겨 농장을 떠나야 했다.

이후 남편 기숙사에 머물던 Y씨는 같은 달 15일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었고, 17일에는 직접 찾아가 복귀 희망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사장은 “네가 오면 아무도 일하러 오지 않는다. 오지 말라는데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냐”며 다그쳤다. 현재 Y씨는 경기 안산의 외국인쉼터에서 머물고 있다.

결국 Y씨는 이주노동자 상담소 ‘지구인의 정류장’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25일 양산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넣었다. 강제휴직기간 동안의 임금 102만원과 그간 체불급여 3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달 10일 근로감독관과 함께 한 면담자리에서도 고용주는 오히려 “(Y씨가 일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일손이 부족해져 고추를 다 따지 못했다.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Y씨에게서 메르스 의심 증세가 나타났었다는 마을 사람 20여명의 서명도 제출했다. 그는 ‘Y씨가 경기도에 갔던 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사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Y씨는 “지난해 10월 총 근로시간(285시간)이 근로계약서에 쓴 224시간보다 많다고 항의했다가 사장에게 찍혔었다”며 “미지급액을 받은 뒤 근로계약을 종료하고, 빨리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Y씨의 바람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쫓아냈던 사업주가 문제가 되니 복귀를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근무지 무단이탈로 신고하겠다고 겁박하는 상황”이라며 “(Y씨를 쫓아낸) 부당징계에 대해선 김해고용센터, 근로감독관 모두 업무 외 영역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노동자 무단이탈 신고가 접수되면 정부는 해당 근로자를 불법체류자로 간주해 본국으로 강제 송환한다.

안산=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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