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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 숨은 패턴, 삶을 물들이다

입력
2014.11.19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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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강변북로를 지나는 차량 불빛의 행렬을 500mm 반사렌즈에 담았다. 도넛 모양으로 아웃포커스 되어 패턴을 이루는 것은 500mm 반사렌즈의 특징이다.
퇴근길 강변북로를 지나는 차량 불빛의 행렬을 500mm 반사렌즈에 담았다. 도넛 모양으로 아웃포커스 되어 패턴을 이루는 것은 500mm 반사렌즈의 특징이다.

일상 속 숨은 반복과 규칙, 패턴

도대체 몇 쌍둥이야? 줄줄이 축대를 타고 오른 담쟁이 잎이 똑같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이파리에 송송 맺힌 이슬 방울도, 경주하듯 하늘을 나는 오색 풍선도 상큼 발랄한 동그라미다. 식료품점 한 구석, 같은 듯 다르게 고개를 쳐든 버섯 무리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찰칵.

물방울과 하트모양 나뭇잎, 박스에 담긴 느타리 버섯, 담쟁이 잎(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물방울과 하트모양 나뭇잎, 박스에 담긴 느타리 버섯, 담쟁이 잎(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패턴이 만들어낸 고층 빌딩, 아파트

다양하고 복잡한 일상 속에 숨은 반복과 규칙이 흥미롭다. 자세히 보면 비슷하되 똑같지는 않다. 자연의 패턴은 긴 세월을 통해 스스로 터득해낸 생존 규칙이다. 반면에 인간이 만들어 낸 패턴은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처럼 일률적이다. 동일한 물건, 양식의 반복은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규격화된 패턴 덕분에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성냥갑 설계의 반복이 고층빌딩, 고층아파트의 층수를 점점 높이 올려 놓기도 했다. 치밀하게 짜인 계획과 생산의 반복이 없는 사회는 이제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 개성의 상실 정도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에 불과하다.

시장 통 국수 집 앞에 쌓인 배달용 그릇(왼쪽)과 철공소의 다양한 파이프 더미.
시장 통 국수 집 앞에 쌓인 배달용 그릇(왼쪽)과 철공소의 다양한 파이프 더미.

수북히 쌓인 칼국수 그릇과 녹슨 파이프

후미진 뒷골목에선 서민들의 투박한 패턴이 생존과 예술 사이를 넘나든다. 점심 전쟁을 준비하는 칼국수 집 앞에서 규칙적으로 쌓인 배달 그릇이 출격을 기다리고, 철공소 한 켠, 녹슨 파이프가 만들어낸 절묘한 패턴 위에도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도 시작되는 지루한 일상. 탈출을 꿈꾸나요?
오늘도 시작되는 지루한 일상. 탈출을 꿈꾸나요?

패턴화 된 관습과 형식

패턴은 원래 지루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탈출을 꿈꾸는 이유다. 그러나 나만의 개성, 나만의 여유를 누리는데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다. 서울 강남에서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는 원모씨는 “획일화된 디자인이 싫다며 직접 설계를 해 오는 고객들은 비 규격 자재의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대부분 포기한다”고 말했다. 비단 비용문제가 아니라도 삶의 일부가 돼버린 패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리는 탈출을 꿈꾸지만...

도시 전체가 일상에 지쳐버린 시각, 어제처럼 도심을 떠나는 퇴근 차량들. 더디기만 한 동그라미 불빛의 끝 없는 행렬.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규칙적인 세포의 패턴들. 휴식을 찾아 도심을 떠난 행렬은 어김없이 되돌아 온다. 반복된 패턴의 마침표는 또 다른 반복의 시작일 뿐이다. 내일 다시 이어질 패턴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탈출을 꿈꿀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던 것처럼.

사진부 기획팀=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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