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상무 기자

등록 : 2017.11.14 04:40
수정 : 2017.11.17 15:19

[완전범죄는 없다] 67번 시내버스 블랙박스에 찍힌 남자는 친구의 남편, 왜?

<6>부산 고부(姑婦) 살인 사건

등록 : 2017.11.14 04:40
수정 : 2017.11.17 15:19

#살해당한 60대 女재력가

사별 후 시어머니와 단둘이 살아

아들, 모친 연락 안되자 ‘혹시…’

아침 비행기로 급히 부산집 가보니

모두 머리 피 흘린 채 처참한 모습

#“이걸 어째” 감식반 탄식

뒤진 흔적·저항으로 어지러운 집

25회나 머리 내려칠 정도 원한

정작 범인 지문은 현장서 안 나와

유일한 단서는 크기 260㎜ 족적

#범인 동선 추적에 수사집중

CCTV 139개 분석 “저 은색 차…”

피해자와 점심 먹은 동창 남편 조사

“스크린골프…” 알리바이 횡설수설

상당한 빚져 “재산 노린 범죄” 결론

‘뚜루루루… 뚜루루루…’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14년 1월 7일 저녁. 김모(당시 35)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흔치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았던 때가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머니 정모(당시 65)씨는 남편 사별 뒤 시어머니 김모(당시 86)씨와 부산에서 단둘이 살고 있었다. 장남 김씨는 서울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했다. 전화를 하고 받고, 안부를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7년을 보냈다고 김씨는 말했다.

다음날 아침 아들은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전 8시55분. 정씨가 사는 부산진구 가야동에 있는 건물 4층에 도착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지만, 불길한 생각에 현관으로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

정씨는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서 흐른 피가 흥건했다. 피는 바닥에 4m 정도 퍼져 말라 있었다. 비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작은 방에서는 할머니 김씨가 피투성이로 발견됐다. 피가 스며든, 김씨를 덮고 있던 흰색 이불은 절반 이상이 새빨갰다. 둘 다 숨이 멈춘 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본부를 꾸렸다. 관할인 부산진경찰서 강력팀과 형사팀 전원, 부산경찰청 파견 과학수사요원까지 73명에 달하는 인원이 투입됐다. 현장에 나간 경찰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금방 끝나지 않겠냐”는 기대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너저분한 현장에서 범인 지문 하나 안 나오면 그게 이상한 거지.” 누군가 무심코 내뱉었다. 살해 현장과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였다.

아수라장이었다. 와인 병이 산산조각 나 거실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범인에게 공격 당하기 전에 피해자가 던진 듯했다. 안방 장롱 안 보석함은 부서져 있었다. 범인이 집안을 뒤진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화장실 욕조에는 범인이 몸에 묻은 피를 닦기 위해 담아 놓았는지 물이 가득했다. 그 안에 정씨 휴대폰이 있었다. 가스 밸브 바로 밑 관이 날카로운 흉기에 반쯤 잘려져 있었다. 가스가 조금씩 새고 있었다.

감식하던 과학수사관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오는 게 없습니다.” 집안은 물론이고 건물 옥상부터 1층까지 계단 난간 문고리 등 사람 손이 닿을 만한 곳을 샅샅이 살폈지만, 당장 수사에 도움이 되는 건 채취한 지문 3개가 전부였다. 그나마 족적이 여럿 나온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K제화에서 나온 베스트시리즈 260㎜ 구두.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부검 결과가 나왔다. 두 명 모두 망치 같은 둔기로 머리를 가격 당해 숨졌다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결론을 내렸다. 눈에 띄는 건, 이들이 맞은 횟수였다. 김씨가 9번. 정씨는 무려 25번이었다. 무차별적인 가격. 피해자가 쓰러진 뒤에도 범인은 둔기를 계속 휘둘렀다는 얘기다. 그것은 ‘죽이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경찰은 ‘원한 관계에 있는 면식범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사망 추정 시각에도 차이가 났다. 김씨가 사망하고 1시간30분 정도 지나서 정씨가 숨졌다. 범인은 김씨를 살해한 뒤 그 시간 동안 정씨를 기다린 게 분명했다. 마침 경찰 조사로 정씨가 자신이 살던 건물을 포함해 부동산만 당시 시가로 43억원 정도를 가진 재력가라는 게 확인됐다. 많은 금액의 예금과 수억원 가치를 지닌 보석도 금융기관 개인금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김씨를 죽이고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봤지만 돈이 될 만한 게 안 나온 거죠. 그래서 정씨가 오기를 기다렸을 겁니다.” 당시 수사 경찰은 그렇게 예상했다.

‘원한 혹은 재산’. 경찰은 두 가지 키워드에 집중했다. 우선 정씨 주변인에 초점을 맞췄다. 친인척부터 정씨 건물 전·현 세입자, 학교 동창, 집을 몇 번 오간 택배기사까지 총 419명이 차례차례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뚜렷하게 혐의점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정씨)이 누구에게 원한 살 사람은 아니죠.” “성격이 워낙 원만해서 사람들이랑 잘 지냈어요.” 주변 사람 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좀 더 범위를 넓혀 가야2동 전체 1,821세대를 상대로 혐의점 및 알리바이를 확인했지만 역시 허탕이었다.

수사본부가 잠깐 들썩이긴 했다. 정씨 소유 물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모자에 쓰여진 ‘박○○’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유족 중에는 ‘박○○’을 아는 이가 없었다. 경찰이 전국에서 파악한 동명인물은 102명. 부산 창원 지역으로 좁히니 6명이 나왔다. 102명을 조사하고, 6명에 특히 집중했지만 피해자와 접점은 없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K제화 베스트 시리즈 260㎜’도 별 도움이 안됐다. 이 신발은 2007년부터 사건 당시까지 판매되던 인기 제품. 부산 매장 9곳에서만 몇 달 새 100명 이상이 구입해 갔다. 경찰은 경남 지역 매장까지 수사를 확대해 142명 인적 사항을 차근히 확인해 나갔다. 그런데 용의자는 좀처럼 수사망에 걸리지 않았다. 카드가 아닌 현금 결제일 경우 신발을 사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갔다. 정씨와 김씨를 누가 살해했는지는 고사하고, ‘이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 내 아무도 없었다. 수사본부 안에서 “이러다 미제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웬만한 수사 포인트는 대부분 짚어봤기 때문에 수사 인력도 40명대로 축소됐다. ‘범인을 못 잡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남은 희망은 폐쇄회로(CC)TV였다. 수사 초기 현장 주변을 포함해 가야2동 일대 CCTV 139개를 확보해뒀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1,215명과 차량 2,255대 정보도 수집해놨다. 이중 범행 현장 방향으로 진입했다가 빠져 나온 205명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거동이 특히 수상한 11명이 포착됐다. 사건 발생시간 전후로 운행된 13개 노선 버스 125대에 설치된 블랙박스까지 확보해 분석에 나섰다. 목표는 하나. “귀신이 아니고서야 범행 현장 방향으로 갔다 나오는 게 찍혀 있겠지. 무조건 찾아내라.”

단서는 범행 현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150m 아래, 대로변을 찍고 있는 오래된 철물점 CCTV 영상에 있었다. 1월 7일, 정씨가 아들 전화를 받지 않았던 그날 오후 1시38분. ‘은색 차량’이 화면에 등장했다. 집에 김씨가 혼자 있고, 오전 내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정씨가 고교 동창 원모씨와 만나 밥을 먹던 때였다.

수사관이 펄쩍 뛰며 소릴 질렀다. “5분 뒤 화면을 보세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내려서 범행 현장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수사본부가 들썩였다. ‘은색 차량에서 내린 검은 점퍼를 입은 사람’이 다시 나오는 장면만 잡아내면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나왔습니다!” 버스 블랙박스를 분석하던 팀이었다. 대로변을 지나는 67번 시내버스 전면 오른쪽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오후 4시14분쯤 ‘은색 체어맨’에 타는 남성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은색 체어맨은 주차된 위치상 철물점 CCTV에서 확인된 그 차량이 분명했다. 그 시간이면 정씨가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간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범행 추정 시간 ‘직전’에 범행 현장으로 향했다가 범행 추정 시간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남성이 포착된 것이다. 차에서 내렸을 때 입고 있던 검은 점퍼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수사관이 의문의 남성 얼굴을 가리켰다. “혹시 이 사람 피해자가 만나고 있던 원씨 남편 아닌가요?” 수사관들이 화면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정씨와 함께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한 고교 동창 원씨. 그의 남편 김모(당시 66)씨가 맞았다. 그가 타고 다니던 차량도 마침 은색 체어맨이었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김씨는 사건 초기에도 잠시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아내를 통해 이미 정씨를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1억5,000만원 가량 돈 때문에 지인과 법적으로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다. ‘재산을 노린, 돈이 필요한 정씨를 알고 있는 이’라는 공식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사 초기 경찰이 김씨를 ‘포기’한 이유가 있었다. 돈을 두고 다툼은 벌이고 있었지만 외견상 당장 돈이 급해 보이지 않았다. 교회 장로로 신실한 종교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정씨 장례식에 참석해 아들을 감싸며 토닥이는 모습에서는 도무지 살인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경찰로서는 “그날 정씨 집 근처로는 간 기억이 없다”는 김씨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우선 김씨를 임의동행했다. CCTV 화면이 있을 뿐,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었다. 범행 현장 근처에 나타난 오후 1시38분부터 떠난 오후 4시14분까지 행적을 캐묻는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그 시간 동안 그 동네에서 뭐하고 있었어요.” “근처에 다니는 스크린골프장이 있어서 갔습니다.” 실제 근처에 스크린골프장이 있었다. “스크린골프장 화장실 위치랑 구조를 묘사해보세요.” 김씨가 머뭇거렸다. “사실대로 말하세요. 그때 뭐하고 있었어요.” “사실 내연녀가 있는데. 차 안에 함께 있었습니다.” 경찰은 김씨가 내연녀라고 주장하는 여성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김씨와 내연 관계가 아니고, 그날 같이 있지도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게다가 김씨가 운영 중이던 경남 고성군 가리비 양식장 인근 건물 2층에서 ‘K제화 베스트시리즈’ 신발이 발견됐다. 감정 결과,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일치했다. 신발 실밥에서는 죽은 정씨 혈흔이 검출됐다. 김씨는 결국 손을 들었다. “네 제가 죽였습니다.”

김씨는 그날 차에서 내린 뒤 곧바로 정씨 집으로 향했다. “부동산 임대업자”라고 하자, 죽은 김씨가 문을 열었다. 집으로 들어간 지 1시간이 지났지만 정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는 기다리기 어려웠다. 피해자 김씨의 의심스런 눈초리가 부담스러웠다. 미리 준비된 장갑을 낀 뒤 둔기를 들고 김씨가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정씨가 집으로 들어왔다. 정씨는 와인 병을 던지고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씨 휴대폰을 물이 담긴 욕조에 버리고, 구두에 묻은 피를 화장실에서 씻고 정씨 지갑을 들고 나왔다. 범행 당시 입었던 검은 점퍼는 트렁크에 넣어 놨다 근처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범행 도구는 정씨 집 옆 공사장에 세워져 있던 트럭에 던져버렸다. 김씨는 “다 끝내고 사우나로 가서 온몸을 씻고 나왔다”고 했다. 실제 사우나 CCTV에는 웃으며 나오는 김씨 얼굴이 찍혀 있었다.

김씨는 다만 ‘범행 동기’를 두고는 횡설수설했다. 정씨를 기다리는데, 시어머니 김씨가 갑자기 자신과 돈 때문에 싸우고 있던 지인으로 보였다고 했다. “정씨 재산을 노렸냐”는 질문에는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거친 결과를 바탕으로 ‘재산을 노린 계획범죄’라 결론 내렸다. 2015년 7월 대법원은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 선고했다.

부산=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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