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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 국정 문체 ‘팔고문’ 창작과 사상 자유 옭아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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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 국정 문체 ‘팔고문’ 창작과 사상 자유 옭아매

입력
2015.10.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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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문이란 무엇인가

왕카이푸 지음ㆍ김효민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368쪽ㆍ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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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 청(淸) 시대에는 과거시험 답안을 쓸 때 사용할 수 있는 문장 형식이 정해져 있었다. 나라가 정한 특정 구성을 엄격히 지켜야 하고 저자가 마음대로 자기 견해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팔고문(八股文), 사서문(四書文)이라고도 한다.

팔고문의 실체를 낱낱이 분석한 학술서 ‘팔고문이란 무엇인가’가 번역 출간됐다. 고대 문장학과 명ㆍ청시대 고문 전문가인 왕카이푸 중국 수도사범대 중문과 교수가 방대한 관련 자료들을 두루 조사 및 연구한 결과물이다. 1991년 중국 허핑출판사에서 처음 출판됐고, 2002년 중화서국에서 수정ㆍ증보한 개정판이 나와 총 1만 6,000부가 읽혔다. 국내에서 팔고문이 단행본으로 본격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한국어판에서는 중화서국본을 기본으로 번역하되 팔고문 작품 41편을 일일이 소개하는 제16장의 경우, 10편만을 수록한 초간본을 따랐다. 책은 이 같은 팔고문의 구조와 작법, 생성 배경, 변화와 발전상, 교육방식, 학자들의 팔고문 비판 내용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팔고문은 필자가 ‘성현을 대신해 말하도록’ 규정했는데, 문장에 반드시 유가 사상의 풍모를 드러내고 사서 중 의리(義理)를 설명해야 했다. 이를테면 공자의 “부모가 살아계시면 멀리 다니지 않는다”를 주제로 글을 쓸 경우, 유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인용문을 활용하고, 임의로 개인의 견해를 드러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배하는 경우 낙방하는 것은 물론 처벌까지 받았다.

청나라 말기 교육기관인 의란현학(宜蘭縣學)에서 작성된 팔고문. 시경(詩經)을 주제로 출제된 정기 학력평가에서 3등을 한 여계분(呂桂芬)이라는 이의 답안지다. 글항아리 제공
청나라 말기 교육기관인 의란현학(宜蘭縣學)에서 작성된 팔고문. 시경(詩經)을 주제로 출제된 정기 학력평가에서 3등을 한 여계분(呂桂芬)이라는 이의 답안지다. 글항아리 제공

저자는 팔고문이 “명청대에 들어 상공업이 발전하고 유가경전을 위협하는 지식이 발달하자, 사상과 지식인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봤다. 또 “사상을 경직되게 하고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주 요인이 됐다”고 평가한다. 벼슬을 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은 팔고문 외의 다른 문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사고의 틀 역시 경악할 만큼 편협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97년 작고한 향토문학 작가 류사오탕은 이 책의 서문에서 “내 마음 속에서 팔고문은 전족과 변발, 아편담뱃대 같은 부류인 터라 생각만 해도 거북하다”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당대에도 팔고문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청대 서대춘은 “사람을 기만하는 잔재주”라고, 공자진은 “이미 오랜 세월 창조적 시도를 번번이 좌절시킨”것으로 비판했다. 결국 팔고문은 통치자에게 이바지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사상을 구속하는 족쇄로 깨어있는 모든 지식인의 미움과 숱한 상소를 유발했고 1902년 청 조정의 과거제도 폐지와 함께 사라지며 500여 년의 수명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중국 학계는 왜 역사 발전을 가로막은 폐물을 이토록 성심성의껏 분석하고 기록하고 되새기는 것일까. 저자는 “(오늘날 중국의) 각종 형식주의와 교조주의 등이 과거 팔고문의 모습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 만큼, 팔고문의 모습을 살펴 이해하게 된다면 역사를 거울로 삼는 데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적었다.

추천사를 쓴 류사오탕 역시 “아편과 아편담뱃대라 해도 모조리 내버려서는 안 되며, 아편은 제약공장에 보내 약을 만들게 하고 아편담뱃대는 약간 남겨서 박물관에 보존해야 한다”는 루쉰의 당부를 인용하며 말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찍이 중국 역사상 수백 년을 횡행했던 팔고문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맹목적 부정의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상 발생했던 것이나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우리는 과학적으로 ‘왜’라는 의문을 던져야 하며, 또 얼마만큼 장단점이 있고 여전히 쓸모가 있는지를 물어야만 한다.”

감추고 싶은 역사일수록 바르게 끄집어내 살피며 ‘왜’를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지당한 사실을 “패배주의적 역사를 가르쳐서야 되겠냐”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부르짖는 우리 정부나만 모르는 듯하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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