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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누른 ‘좋아요’ …페이스북 커밍아웃 조심하세요

입력
2016.03.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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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저 공짜 쿠폰 인심 쓰듯 '좋아요'를 눌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좋아요'가 축적되다 보면 그것은 당신의 성향과 사고구조, 취향의 판단 근거가 된다. 삽화 신동준 기자
당신은 그저 공짜 쿠폰 인심 쓰듯 '좋아요'를 눌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좋아요'가 축적되다 보면 그것은 당신의 성향과 사고구조, 취향의 판단 근거가 된다. 삽화 신동준 기자

#필리버스터 정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지난달 말. 뉴스피드에 속속 올라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어록을 읽으며 ‘마이 국회 텔레비전’의 감동을 만끽하던 A씨는 시야를 강타하는 게시물 하나와 마주쳤다. 가까이 지내는 회사 선배가 누른 ‘좋아요’ 덕분에 필리버스터를 조롱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뉴스피드에 뜬 것. ‘좋아요’라는 게 말 그대로 ‘좋은 게 좋은’, 친목과 우정을 도모하기 위한 형식적 아이콘이라고 생각해온 터라 크게 개의치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사람이 달리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후 ‘국회 마비, 수출 급감’ 헤드라인이 달린 기사에 다시 한 번 ‘좋아요’가 눌린 것을 본 후 A씨는 조용히 ‘언팔’(unfollow) 버튼을 눌렀다.

#잡지사 기자 B씨는 무심코 페이스북 친구가 공유한 동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미모의 젊은 여성이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한 데이트 신청은 거절하더니 벤츠를 몰고 온 남자에게는 단번에 오케이를 하는데, 알고 보니 초라한 남성이 차주인이고, 운전자는 기사라는 내용이었다. 웃자고 올린 이 동영상의 제작·출처는 아니나 다를까 유명 여성혐오 페이지였다. 번듯한 학력과 교양의 소유자라고 여겼던 ‘페친’인지라 B씨는 고민에 빠졌다. “적극적으로 의견 제시를 한 것도 아니고 소극적으로 ‘좋아요’만 누른 것이라 아직 언팔까지는 안 했다”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좋아요’는 사상과 취향의 엑스레이

SNS 세상이 페이스북의 천하통일로 수렴되면서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들이 사용자들의 인간관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의 ‘앙꼬’인 ‘좋아요’와 ‘공유’는 자신의 글이나 사진을 전혀 올리지 않고도 사고 구조와 내면, 취향까지 고스란히 노출하게 만든다. 손가락으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머리 속을 엑스레이로 찍어 전 세계로 타전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의도치 않은 정치적·사상적 ‘커밍아웃’ 덕분에 날씨와 건강 얘기면 족했을 인간관계는 유지가 한층 힘들어지고 있다.

워킹맘 C씨는 몇 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만난 중학교 시절 친구를 지난해 언팔했다. 친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은 알았지만, 동성애를 그토록 혐오하는 줄은 몰랐다. “동성애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한다는 둥, 우리 아이들을 위해 동성애 반대 집회에 나가야 한다는 둥 각종 동성애 혐오 게시물이 제 뉴스피드에 뜨는데, 참기 어렵더라고요.” C씨는 “정말 친했던 친구고,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사람인데, 힘들게 되찾았다 다시 잃어버린 셈”이라며 “차라리 그런 생각을 하는 줄 몰랐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2013년 도입한 언팔 기능은 친구를 맺은 사용자가 뉴스피드에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도록 차단해주는 장치다. 언팔 여부는 언팔의 주체만 알고, 객체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본인의 뉴스피드를 자발적으로 큐레이팅하고 수많은 콘텐츠 중 보다 관심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도입했다는 게 당시 페이스북의 공식 설명이지만, 현실에선 난처한 친구 관계를 끊는 보다 예의 바른 방법으로 애용되고 있다. 친구 삭제(unfriend)보다 덜 과격할 뿐만 아니라 훗날 다시 ‘팔로’ 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둔다는 점에서 양심의 가책도 덜하다.

회사원 D씨는 야한 옷차림의 사진을 거의 매일 올리다시피 하는 젊은 여성의 게시물에 빼놓지 않고 좋아요를 누르는 학교 은사를 최근 언팔했다. “처음에는 뭔가 있겠지,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볼수록 야한 옷차림과 야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두 줄 멘트가 게시물의 거의 전부더라고요. 꾸밈 없고 진솔한 성격 때문에 존경 받은 선생님이시지만, 계속 보기는 힘들었어요.” ‘좋아요’를 무료 쿠폰 뿌리듯 함부로 눌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페이스북, 나한테 왜 이러니?

알고리즘을 통한 취향 우선 배열이라는 공격적인 마케팅은 페이스북의 성공 요인인 동시에 비호감과 공포의 근원이기도 하다. 국내 도입 초기 아무 생각 없이 가입 페이지에 출신학교와 직장을 줄줄이 적었다가 아직까지도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시 보기 불편한 전 직장의 동료나 이별의 트라우마가 극복 안 된 전 애인을 ‘친구 추천’이나 ‘알 수도 있는 사람’의 리스트로 잊을 만하면 한번씩 보여주며 식겁하게 만드는 건 고전적 행태. 개인정보와 기능설정으로 철벽 보안을 한다 해도 페이스북은 때때로 나의 취향과 사상을 제멋대로 재단한다. 무심코 누른 좋아요 한번에 원치 않는 광고에 시달릴 수도 있고, 친구들이 누르는 좋아요 때문에 ‘싫어요’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게시물을 계속 봐야 하는 수도 있다.

전업주부 E씨는 아이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이웃 엄마와 페이스북 친구가 됐다가 남몰래 언팔한 적이 있다. 해외 럭셔리 제품이나 유명 리조트의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눌러대는 통에 뉴스피드가 폭격을 맞은 듯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명품 선글래스가 뜨고, 어느 날은 명품 립스틱이 뜨고, 가방에 옷에 그릇에 끝도 없더라고요. 본인이 그런 취향을 갖고 있다는 걸 꼭 그렇게 알려야만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함부로 차단할 수도 없는 관계라 난처하더라고요.” 적극적으로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아 언팔 기능을 몰랐던 E씨는 한참 후에야 그런 기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E씨는 “페이스북의 언팔 기능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언팔’이 불러온 사교관계의 양극화

총선이 다음달로 다가오면서 언팔이 가장 자주 소환되는 영역은 역시 정치다. 페이스북은 언팔의 원인을 따로 추적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자사에 보내온 수천 명의 독자 이메일과 댓글을 분석한 결과, 사용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취향에 매우 거슬리는 게시물이 증가할 때 친구, 지인, 심지어 가족들도 언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 언팔을 통한 조기 대선 투표’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따르면, “정치와 소셜 미디어 때문에 규칙적으로 해오던 가족들과의 연락마저 끊었다”는 사용자도 있었다.

문제는 언팔이라는 정중한 거절의 기능이 정치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이도록 만들면서 여론장을 균질화된 두 공간으로 분절하고 있다는 것. 뉴욕타임스는 “그 결과 SNS 공간은 종종 진영을 대표하는 여론매체와 결합해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며 널리 유포됐던 “다양한 의견의 시장을 제공한다는 약속은 허언이 되고, 웹 공간은 자기지속적인 에코체임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별 취향에 맞춘 최고의 콘텐츠부터 노출한다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가세한다. 페이스북의 영업비밀인 알고리즘은 좋아요나 클릭, 댓글, 공유 등을 뉴스피드 상단 노출의 주된 잣대로 사용함으로써 사용자가 가장 안 볼 것 같은 게시물들을 뉴스피드의 후순위로 밀어낸다. 누군가 힐러리 클린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렀다면,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게시물은 거의 보지 못하고 클린턴에 대한 게시물만 더 많이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과 접촉할 가능성 자체가 낮아진다. 소셜미디어를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공론장의 기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구조다.

잡지사 기자 B씨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가급적 언팔은 하지 않는다. “선택적 노출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매체가 SNS잖아요. 나와 다른 의견을 견디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어요. 트위터만 하다 보면 정권교체가 기정사실인 것 같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늘 아니었던 것처럼요. 길지도 않은 인생, 왜 이런 글을 읽으며 허비해야 하나 싶은 반감이 들 때마다 그 생각을 합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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