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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

입력
2014.06.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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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최근 들어 미국의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워싱턴에서 회의에 참석하거나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동북아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런 시각에 어느 정도 동의를 표하는 모습들이다. 항간에는 일본 학자들과 일본을 중심으로 동북아를 연구하는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런 주장이 퍼진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은 물론 중국과의 관계 또한 중시하며 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전에 비해 중국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동북아에서 미중 사이의 전략적 경쟁과 견제의 구도가 심화되는 가운데 아베 내각이 이끄는 일본은 중국과의 갈등이 높아지는 반면 미일동맹은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중국에 기울고 있다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동북아 정세를 조금만 더 자세히 본다면 한국은 중국과 더욱 가까워질 요인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미동맹을 중시해 중국과의 협력을 일정한 선 아래에서 유지하고 있다.

양국관계, 특히 중미관계를 설명하는 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편의 글이 있다.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이었던 왕지스와 미국 최고의 중국전문가 중 한명인 케네스 리버달은 2012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미중관계의 문제점을 ‘전략적 신뢰’의 결핍으로 진단, 이를 극복해야 양국관계의 발전과 협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약 1년 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자인 칭화대 당대(當代)국제관계연구원장 옌쉐통은 외교잡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중관계는 신뢰의 결핍이 문제가 아니라 ‘공통 이익’의 유무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공동 대항했던 영국과 소련을 하나의 예로 들며 상호불신이 가득한 두 나라 사이에도 공유하는 이익이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런 협력이 거듭되면서 새로운 신뢰도 쌓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는 중국과의 신뢰 형성을 강조해 왔다. 특히 양국 지도자 사이의 신뢰감을 중심으로 한중 사이의 신뢰는 분명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중은 무역과 경제 협력은 물론, 역사와 영토문제에서 일본에 대응하는 공통의 이익이 존재한다. 이렇듯 한중 사이에는 ‘신뢰’와 ‘공통이익’이 적잖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에 대응하는 중국과의 공동보조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자기반성이 결여된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과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에 대해 한국과 중국은 모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나 한국은 중국과 같은 비난을 자제해 왔다. 이는 일본 군국주의와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한국이 중국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덜해서가 아니다. 60년 넘게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정부의 국내외적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이 과거 미소 양극체제와는 다른 현재의 미중 구도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도,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도 한국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주장해왔다. 또 한국을 향한 중국의 호의가 하얼빈의 안중근 기념관과 시안의 광복군 표지석 등 일본과 대립되는 역사적 상징물 건립에는 적극적이지만, 한국의 실질적인 국익과 관련된 북핵, 통일문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에서 중국이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도 한국은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정말로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고 오해하든, 아니면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얻기 위한 선제적 압박이든, 현재의 한국은 중국에 기운 것이 아니다. 일본이 한국을 중국 쪽으로 떠미는 원인을 계속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중국과의 관계를 힘들게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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